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현재에 충실합시다.

ohjulia 2006. 5. 4. 05:48
2006년 5월 4일 부활 제3주간 목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8,26-40
그 무렵 26 주님의 천사가 필리포스에게 말하였다. “일어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거라. 그것은 외딴길이다.”
27 필리포스는 일어나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내시로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면서, 자기 수레에 앉아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29 그때에 성령께서 필리포스에게, “가서 저 수레에 바싹 다가서라.” 하고 이르셨다.
30 필리포스가 달려가 그 사람이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 것을 듣고서,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러자 그는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서, 필리포스에게 올라와 자기 곁에 앉으라고 청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러하였다. “그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 양처럼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 속에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 버렸으니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
34 내시가 필리포스에게 물었다. “청컨대 대답해 주십시오. 이것은 예언자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35 필리포스는 입을 열어 이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그에게 전하였다.
36 이렇게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말하였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37)
38 그러고 나서 수레를 세우라고 명령하였다. 필리포스와 내시, 두 사람은 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필리포스가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였지만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 40 필리포스는 아스돗에 나타나,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복음 요한 6,44-5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중국 음식점을 갔을 때 항상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자장면이 맛있을까, 아니면 짬뽕이 더 맛있을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신중하게 선택한 자장면. 하지만 다른 사람의 앞에 놓여 있던 짬뽕이 더 맛있게 보이지요. 그래서 체면 불구하고 “한 젓가락만…….”하면서 뺏어 먹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먹는 것만 그럴까요?

교통체증이 심한 도로에서 자기 줄보다는 옆줄이 더 잘 빠져 나가는 것 같지요. 그래서 차선을 어렵게 바꾸면 먼젓번의 차선이 더 잘 빠져나갑니다. 또한 급한 일이 있어서 택시를 기다라면 택시는 제가 있는 곳이 아니라 반대편에서만 나타나지요.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제게 어떤 물건을 달라고 말합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필요한 물건도 아닙니다. 하지만 소용없던 물건도 남에게 주고 나면 왠지 아깝고 쓸모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많은 분들이 제가 있는 성지를 방문하셔서는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신부님께서는 천국에서 사시네요. 이렇게 좋은 자연에서 사시는 얼마나 좋으시겠어요?” 하지만 시골에서 사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 것만은 아니랍니다.

이렇게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경우를 우리들은 자주 체험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짐은 너무나 무거워 보이고, 다른 사람의 짐은 내 짐에 비해서 너무나 가벼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럴까요? 다른 사람의 짐이나 나의 짐은 똑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다른 사람의 짐이 나의 짐보다도 더 무거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욕심과 시기심으로 진리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과거 모세 시대에 조상들이 먹었던 만나를 그리워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조상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었다고 하면서 그러한 표징을 예수님께 요청도 했었지요. 즉, 조상님들은 더 큰 은총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요? 오히려 하느님의 외아드님을 직접 보는 것이 더 큰 은총이 아닐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과거에 머무르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지금 현재 ‘생명의 빵’ 자체이신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시지요.

지금 예수님 시대의 일은 또 하나의 과거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들은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놀라운 기적을 요구할 때가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는 이 현재의 시간에도 주님께서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왜냐하면 이천년 전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살 수 있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해당되는 ‘생명의 빵’을 당신을 통해서 계속해서 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족한 것을 생각하고, 또 그것을 갈망하면서 평생을 보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 비하면 다른 사람들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자기의 불행을 과장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갖고 있지 않는 것만 아쉬워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인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의 빵’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내가 받은 큰 선물에 관심을 돌리고 이곳에 최선을 다할 때, 우리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에 충실합시다.



노력의 흔적(퍼온 글)



누구의 발인지 짐작이나 하시겠습니까...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발이 아닙니다.
사람의 발을 닮은 나무뿌리도 아니고 사람들 놀래켜 주자고 조작한 엽기사진 따위도 아닙니다.
예수의 고행을 좇아나선 순례자의 발도 이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명실공히 세계 발레계의 탑이라는 데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을,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입니다.
그 세련되고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세계 각국의 내노라 하는 발레리나들이 그녀의 파트너가 되기를 열망하는, 강수진 말입니다.
처음 이 사진을 보았을 때 심장이 어찌나 격렬히 뛰는지 한동안 두 손으로 심장을 지그시 누르고 있었답니다.
하마터면 또 눈물을 툭툭 떨굴 뻔 하였지요.
감동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어느 창녀가 예수의 발에 입 맞추었듯, 저도 그녀의 발등에 입맞추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마치 신을 마주 한 듯, 경이로운 감격에 휩싸였던 것이지요.

그녀의 발은,
그녀의 성공이 결코 하루 아침에 이뤄진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하루 열아홉 시간씩, 1년에 천여 켤레의 토슈즈가 닳아 떨어지도록, 말짱하던 발이 저 지경이 되도록...
그야말로 노력한 만큼 얻어낸 마땅한 결과일 뿐입니다.

그녀의 발을 한참 들여다 보고..
저를 들여다 봅니다.

너는 무엇을.. 대체 얼마나... 했느냐...
그녀의 발이 저를 나무랍니다.

인정합니다..
엄살만 심했습니다..
욕심만 많았습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