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안드레아 보볼라 (St. Andrew Bobola) 순교자
성인의 활동지역 :
성인의 활동연도 : +1657년
성인과 같은이름 : 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루, 앤드류
성 안드레아 보볼라(Andreas Bobola)는 1590년 폴란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622년 빌나(Vilna, 현재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의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성 카시미루스(Casimirus) 성당에서 사목활동을 하고 1630년 종신서원을
한 뒤 브로뷔스크(Brobuisk)에 있는 예수회의 총장이 되었다.
1636년 안드레아는 리투아니아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라드지웰(Radziwell) 왕자로부터 벨로루시(Belarus) 핀스크(Pinsk)의 수도원을
제공받아 개신교도들과 분리주의자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열성적으로 활동하였다.
1657년 5월 10일 안드레아는 두 명의 코사크인(kazak)에게 납치되었다.
그들은 안드레아를 때리고 묶어서 말의 안장에 매달고는 고문 장소까지 끌고 갔다.
그곳에서 갖은 고문 끝에 참수하였다.
그의 유해는 핀스크에 모셔졌다가 폴로츠크(Ploltsk)로 이장되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예부성성(禮部聖省)은 말하기를 "순교 조사를 무수히 했으나 그 형벌의 잔학성에
있어 안드레아 보볼라보다 더한 것은 아직 들어본 일이 없다."했다.
그렇지만 그의 시성은 비교적 지연되었다.
그가 순교한지 3백년이 경과한 1938년 4월 17일, 예수 부활 축일을 택하여
교황 비오 11세는 그를 성인 반열에 올리게 되었다.
안드레아 보볼라는 1591년에 폴라든의 산도미루 주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귀족으로 조상부터 신심이 깊은 가톨릭 신자이며, 그 백부도 교회를 위해
매우 힘쓴 분으로, 안드레아가 어려서 입학한 예수회 운영의 학교도 그의 기부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그런 가문에 태어난 안드레아도 어려서부터 하느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두터웠고
21세에 예수회에 들어가 신학교를 마치고, 32세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바로 그때 이교도들이 교회를 압박하고 주교 성 요사팟을 암살한 사건이 있었다.
안드레아는 교회의 적들을 꼭 회심시키려고 위르나 및 그 부근을 순회하며,
그가 특히 연구한 호교론을 힘기울여 설교하며, 일부러 상대방이 존경하는
성 바실리오의 저서를 인용해 그들을 계몽함에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임에는 다만 학문과 지식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며
반드시 하느님의 은총이 있어야 하므로, 그는 이 은총을 얻기 위해 기도와
고행에 노력하며, 그러한 목적으로 맨발로 거닐며, 설교 전에는 꼭 단식을 했다.
그리고 그는 죄수를 방문해 이들을 위로하고, 병자들을 찾아서는 이들을 격려하고
그 영혼 구원을 위해 온 정성을 다 기울였다.
1625년부터 1629년까지 폴란드에는 무서운 페스트가 만연했는데, 이때 안드레아는
생명을 내걸고 수명의 형제(수사)들과 같이 이 병의 간호에 눈부신 대활약을 했다.
이 같은 희생이 하느님의 눈에 안 들리가 없었다.
이단자들이 속속 교회에 귀화하는가 하면, 때로는 한 마을이며, 한 도시가 전부
귀화하는 정도였다.
이리하여 안드레아의 헌신적인 활동은 마침내 전국에 평판이 높아가고, 신자들은
그를 영혼의 사냥꾼이라 칭찬하는가 하면, 이단자들은 그를 영혼의 도적이라고
증오했고 그들의 앙숙들은 길거리에 숨었다가 그가 지나갈 때 돌팔매질을 하는
형편이었다.
안드레아는 이렇게 위험을 겪으며 25년간 교회를 위해 동부서주했다.
그리고 1667년에 러시아 군대가 풀란드에 침입하자, 그들은 지빙의 이단자와 결탁해
가톨릭 신자를 살해하고 수도원, 교회를 파괴하며, 제구와 제복을 모독하고,
더욱이 신부나 수사들을 보기만 하면 용서없이 학살했다.
이리하여 당시의 폴란드는 ’순교자의 나라’라고 칭할 정도였다.
그때 안드레아는 신자들과 피난해 핀스크 시까지 왔지만, 그 지방의 이교도들에게
밀고되었음을 알고 다시 피해서, 5월 16일 아침에 야노 시 부근 페렛디르 성당에서
미사를 지냈는데, 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러시아 병정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신자들의 권유대로 마차를 타고 피하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더 이상 피할 수가 없게 되어, 그는 마침내 각오하고
마차에서 내려 땅에 꿇어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를 올렸다.
"주여! 당신 의향대로 이루어지이다."
러시아 병정들은 그를 잡아 옷을 벗기고 나무에 붙잡아매고 채찍이 부러지도록
때린 후, 큰 가지 중간에 매달아 두 마리의 말로 끌어 그대로 시내에 있는 대장한테
데리고 왔다.
그러자 대장은 극도로 위협하며 "너는 라틴(가톨릭이라는 것)신부냐?"고 물었다.
"예, 나는 가톨릭 사제입니다. 나는 태생이 가톨릭이니 죽어도 신앙은 버릴 수
없습니다" 하고 안드레아 사제는 대답했다.
병졸들은 그의 눈알을 뺐다.
다음에는 벌거벗기고 평상에 눕혀놓고 새빨갛게 달군 쇠꼬챙이로 옆구리를 지지며
조롱을 가한 후, 머리와 등의 가죽을 벗기고 코와 귀를 베어내고, 목에 구멍을
뚫고 혀를 그리로 뽑아내는 등 갖은 잔악한 짓을 다하고, 인사불성이 되니 쓰레기통에
내버렸다. 얼마 후 고통을 겪은 끝에 마침내 그 영혼을 하느님께 맡기게 되었다.
그때 안드레아의 유해는 기이한 천상적 광채를 발했다 한다.
곧 신자들이 공손히 그 유해를 핀스크시에 모셔가 예수회 수도원 공동묘지에
정성스럽게 장례를 지냈다.
뒤에 그의 전구로 인해 여러 기적이 일어났고, 이에 1853년에 시복,
1938년에 시성되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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