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녀 다이아나(Bl. Diana) 동정녀
성인의 활동지역 : 볼로냐(Bologna)
성인의 활동연도 : +1236년
성인과 같은이름 : 디아나,다이애나
다이아나는 "빛의 여신"이란 뜻이다.
성 도미니코가 이탈리아 내의 자기 수도회 활동을 위하여 한적한 곳을
찾았을 때, 그는 볼로냐를 택하였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소망하던
유명한 대학을 세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적당한 곳을 물색하여 수도원을 지었으나 반대가 극심하였다.
그것은 그 땅을 소유하고 있던 안달로가의 위세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안달로의 무남독녀 다이아나의 간절한 호소에 굴복하였다.
성 도미니코는 사적으로 그녀의 동정서원을 받아들였고, 가능하면 수도생활을
하도록 격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동안, 그녀는 자기집에 그대로 살면서 회개생활을 하였다.
그 후 그녀는 도미니코 수녀회의 수도원을 짓도록 집안 사람들을 설득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부친은 완강히 거부할 뿐 아니라 그녀가 수도회에
들어가는 것조차 금하였다.
이리하여 그녀는 집을 나와서 아우구스티노회에 입회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온 가족이 몰려와서 그녀를 집으로 강제적으로 데려왔다.
집에 온 그녀는 독방에 갇혀지냈으나, 또 다시 집을 탈출하여 록사나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그녀를 방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삭소니아의 성 요르단이 안달로와 그의 아들들을 설득시켰을 뿐만
아니라, 도미니코 수도원을 짓는데 도움까지 베풀도록 마음이 누그러졌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다이아나는 1222년에 4명의 동료와 함께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때 로마의 산 시스또 수녀원에서 4명의 수녀들이 왔는데, 그들 중에
체칠리아와 아마따가 있었다. 이 두 수녀의 생활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다이아나와 마찬가지로 높은 성덕으로 유명하였고, 같은 무덤에 안장되었으며,
1891년에 시복되었다.
체칠리아는 체사리니의 로마 귀족 가문 출신이며 뛰어난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17세 때 뜨라스떼베레 수녀원에 들어갔다.
다이아나는 1236년에 1월 9일에 35세의 일기로 운명하였고,
체칠리아는 창설자 성 도미니코를 오랜동안 도왔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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