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파치피코(Bl. Pacificus) 수사
성인의 활동지역 : 체라노(Cerano)
성인의 활동연도 : 1424-1482년
성인과 같은이름 : 빠치피꼬, 빠치피꾸스, 파치피쿠스, 파키피코, 파키피쿠스
이탈리아 노바라(Novara)의 파치피쿠스로도 불리는 체라노의 파치피쿠스
라모타(Pacificus Ramota, 또는 파치피코)는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의
노바라 교구 출신으로 어렸을 때에 부모를 잃었다.
그는 노바라의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은 후 21세 되던 해에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었다. 그 후 사제가 된 그는 주로 이탈리아 내에서 설교자로서 활동했는데,
이것이 성공함으로써 선교사로서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또 그는 윤리신학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고 1475년에는 이를 발간하였다.
1480년에 그는 체라노의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이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적개심이 강한 지역의 선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사르데냐(Sardegna) 섬으로 갔을 때 중병을 얻어서 운명하고 말았다.
그의 유해는 자신의 유언에 따라 체라노에 안장되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세베리노 지역 출신의 파치빗코 성인은 어린시절부터 삼촌 신부님께서
돌봐주셨다.
17세때 포라노 수도원에 입회했고 사제가 된후 교육사업에 헌신했다.
그는 특히 유명한 강론가로 알려졌지만 불행히도 35세때 중풍으로 전신마비,
청각장애등 육체적인 고통이 계속 되었다.
그러나 성인은 초자연적인 은총의 힘으로 마지막까지 훌륭한 생애를 살았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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