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내 이웃에게 던졌었던 오해와 서운함을 거둬들입시다

ohjulia 2006. 6. 22. 07:41
2006년 6월 22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제1독서
집회서 48,1-14
1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2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들였고,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
3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 보냈다.
4 엘리야여, 당신은 놀라운 일들로 얼마나 큰 영광을 받았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자랑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5 당신은 죽은 자를 죽음에서 일으키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말씀에 따라 그를 저승에서 건져 냈습니다. 6 당신은 여러 임금들을 멸망으로 몰아넣고, 명사들도 침상에서 멸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7 당신은 시나이 산에서 꾸지람을 듣고, 호렙 산에서 징벌의 판결을 들었습니다. 8 당신은 임금들에게 기름을 부어 복수하게 하고, 예언자들에게도 기름을 부어 당신의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9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10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1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12 엘리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엘리사는 일생 동안 어떤 통치자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13 그에게는 어떤 일도 어렵지 않았으며, 잠든 후에도 그의 주검은 예언을 하였다.
14 살아생전에 엘리사는 기적들을 일으켰고 죽어서도 그의 업적은 놀라웠다.


복음 마태오 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선 강화지구 사제연수에 잘 다녀왔음을 여러분들에게 보고 드립니다. 사실 지난 월요일부터 새벽 묵상 글이 오지 않는다고 혹시 제게 또 무슨 사고가 있나 라고 생각하신 분이 많으신 것 같더군요. 또 어떤 분께서는 공지도 없이 그렇게 훌쩍 떠날 수 있냐고 말씀을 하신 분도 있으셨습니다.

많은 분들로부터 이러한 내용이 담긴 메일, 쪽지 등을 보면서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저는 공지를 했거든요. 제 카페에 공지를 했었고, 제가 새벽마다 하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도 계속해서 공지를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공지를 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분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맞습니다. 공지를 보지 않았던 것이지요.

새벽 묵상 글은 원래 ‘빠다킹 닷 컴(http://www.bbadaking.com)'에만 올리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의 웹사이트에 올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에 허락을 하다 보니 꽤 많은 사이트에 제 글이 올라가게 되었고, 따라서 제가 관리하지도 않는 사이트에 연수 간다고 공지를 할 수도 없겠지요.

아무튼 ‘빠다킹 닷 컴’이라는 사이트에만 들어오셨어도, 또 제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을 들으시기만 했어도, 이러한 오해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몰랐기 때문에 오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어쩌면 세상의 오해가 다 이런 것이 아닐까요? 내 기준에서 분명히 맞다고 생각한 앎과 상대방의 의견이 달랐을 때, 오해와 함께 그로인한 다툼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앎이라는 것이 그렇게 완벽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긴 우리들은 심지어 주님께도 나의 부족한 앎을 내세워 내 밑으로 주님을 두려고 하고 있지요.

‘내가 이렇게 열심히 기도했는데, 왜 저의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습니까? 주님, 왜 저 사람한테는 저렇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시면서, 저한테는 왜 이렇게도 무관심하십니까?’

이러한 개인적인 기도, 이기적인 기도를 가리키면서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잘못된 그리고 부족한 앎을 통해서 주님께 빈말을 얼마나 많이 되풀이 했었던가요? 그래서 내 이웃에게 던졌던 오해와 서운함을 주님께도 얼마나 많이 터트렸던가요?

바로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이러한 면들을 고칠 수 있도록, 당신께서 직접 가장 낮은 자의 모습을 취하십니다. 그래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의 육신을 취하시고,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당하시지요. 그리고 이러한 낮아짐이 바로 부활의 큰 영광으로 이어짐을 직접 보여주십니다.

이제는 낮아지고 작아져야 합니다. 특히 내가 주님처럼 완벽한 앎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더욱 더 작아지고 낮아져야 합니다. 그 모습이 바로 주님을 따르는 제자 됨의 길입니다.


내 이웃에게 던졌었던 오해와 서운함을 거둬들입시다.



지우개(임헌우, '좋은 글' 중에서)

나의 하루를 채 쓰기도 전에
지워야 할 것들이 많아 힘들었지
하루 치의 이기심,
또 그만큼의 자존심과
다른 이에 상처를 준 많은 단어들
온전히 지우고 다시 써내려 갈 수 있다면
내 몸이 닳아 없어져도 행복하겠지

내게 불필요한 것들을
억지로 지워내다
때론 찢어지는 고통을 견뎌내야 하겠지만

아문 상처 사이로 새살이 돋아나듯
내 남루한 기억들을 걷어내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하루를 잘 써 내려가는 일보다
하루를 잘 지워내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을 깨닫는 날

지우개 똥보다 못한 욕심 때문에
난 몇 번이고 지우고 다시 썼던가

빼곡이 채워진 성급함보다
텅 빈 여백의 쓸쓸함을 즐길 수 있을 때까지
욕심 없이 버려야 한다
깨끗하게 지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