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rd/† 聖人들의 삶을 통해서

십자가의 성녀 데레사 베네딕타 [에디트 슈타인] (8월 9일) 수녀, 철학자, 순교자

ohjulia 2006. 8. 9. 02:57
고향으로 , 십자가의 성녀 데레사 베네딕타
 

    십자가의 성녀 데레사 베네딕타 (St. Teresa Benedicta of the Cross) 수녀, 철학자, 순교자

    성인의 활동지역 : 성인의 활동연도 : 1891-1942년 성인과 같은이름 : 베네딕다, 베네딕따, 분다, 에디트 슈타인, 테레사, 테레시아 1891년 10월 12일 독일 동북부 지역의 브레슬라우(Breslau)의 전통 유대인 가정에서 11번째 아이로 태어난 성녀 에디트 슈타인(Edith Stein)은 두 살 때 목재상을 하던 아버지 지그프리트(Siegfried Stein)를 일사병으로 여의고, 열심한 유대인이었던 어머니 아우구스트(Auguste Stein Courant)에 의해 양육되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거행되는 유대교 전통 예식을 보며 자랐고, 유달리 고집스럽고 사색과 독서를 좋아하는 학구적인 성격의 아이였다. 11세 때 숙부의 갑작스런 죽음을 경험하면서 삶의 궁극적인 의미에 대해, 그리고 유대인들이 믿고 있는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하였다. 또 가족과 친지들의 형식적인 유대교 의식과 기도에 실망하여 더 이상 참석하지 않기로 결단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11년까지는 브레슬라우에서, 그리고 1913년부터는 괴팅겐(Gottingen) 대학으로 옮겨 심리학, 철학, 역사학, 독일어학 등을 공부하였다.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잠시 간호사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녀는 1916년 프라이부르크(Freiburg)에서 후설(Edmund Husserl)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고 그의 개인조교가 되었다. 그 후 독자적인 연구 활동을 하며 교수 취임 논문을 제출하고 후설이 직접 추천서까지 작성해 주었으나, 당시 독일 학계에서 여성이 교수로 재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브레슬라우로 돌아와 계속 철학 연구 논문들을 집필하던 중 1921년 여름 같은 괴팅겐 학파 친구인 콘라트 마르티우스와 그녀의 남편이 경영하던 농장에 머무르게 되었다. 친구 부부가 외출한 어느 날 서재에서 우연히 손에 잡힌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생애”를 읽고, 그녀는 자신이 오랫동안 실존적으로 회의하고 있었던 신이 그녀를 사랑해 왔으며, 그녀가 전 인격으로 그 사랑에 응답하기를 기다려 왔음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하느님 체험 후 그녀는 평화를 얻었고, 이듬해 1월 1일 테레사 베네딕타 (Teresia Benedicta)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무신론자가 되었다가 다시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가르멜에 입회하였고 아우슈비츠의 독가스실에서 최후를 맞이했던 에디트 슈타인은 온 삶을 진리를 찾기 위해 헌신했던 철학자요 수도자요 순교자로서 우리 시대의 활동적이고 자주적인 여성 중의 빼어난 본보기가 되며, 여성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어 사회와 교회에 철저히 봉사하도록 격려할 수 있는 인물이다. 1998년 10월 11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로마에서 시성된 그녀는 민족과 종교 사이의 평화와 화해를 추구하는 오늘날,우리의 방향 선택에 등대가 될 수 있는 성인이라 하겠다. 1987년 시복식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에디트 슈타인을 재래의 의미로 "순교자"라고 칭할 수 없어서 "사랑의 순교자"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이 칭호를 통해 교황은 에디트 슈타인이 주위에 있던 모든 존재에 대한 사랑을 마지막 극한 상황에서까지 남김없이 드러냈으며 그녀의 모습이 성서의 하느님의 자비로 빛났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교적 영성과 성성의 모범으로 악의 세력에 정면으로 도전한 에디트 슈타인은 신앙의 진리를 추상적 차원이 아니라 경험과 열정으로 실천해야 할 진리임을 제시한다. 현대의 문제인 물질주의, 세속주의, 이교도주의로부터 이탈하는 길로 사랑과 기도의 힘을 제시하고 있다. 에디트 슈타인의 삶은 나의 계획이 없는 하느님의 계획이 어떤 것인가 그리고 어떤 사상을 우리 삶에 새겨 넣어야 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묻고 또한 가르쳐 준다. 20세기 전반의 격동의 시대를 산 특이한 인물로 빼어난 지성과 재능을 겸비한 그녀의 생애는 파란만장하고, 비참하고 숭고한 일생이었다. 에디트 슈타인은 현대라고 하는 정신적인 사막에 단단히뿌리를 내리고,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속 어둠과 갈등을 나눠 가지고 그것을 정화하여 재생시켜 주는 사람이다. 현대의 정신적 위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상황들이 위험인 동시에 하느님을 만나 새롭게 변화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기회임을 깨닫게 해준다. 19세기 말 독실한 유다교 집안에서 출생한 에디트 슈타인은 25살에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뛰어난 학자로서 독일에서 강의와 연설을 하였다. 그가 43살이 되었을 때 가르멜 수녀회에 들어가기 위해서 세상의 지식과 학문이 담긴 책들을 덮어 버렸다. 유다인 혈통이었던 그는 나치의 의해 체포되어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다가 1942년 8월 9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해되었다. 성인들 중에는 에디트 슈타인처럼 뛰어난 학자가 있는가 하면 읽거나 쓸 줄도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성인들이 한결같이 가르치는 것은 지식이나 교육 정도와 상관없이 누구나 거룩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시험 성적이나 학위에 따라 평가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이 성적을 평가하는 과목은 사랑, 인내, 자비와 같은 덕목들이다. 하느님은 학교에서처럼 우리의 성적을 합격 점수, 불합격 점수로 평가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우리가 얼마나 성공했느냐 하는 것보다 얼마나 마음을 다해 노력하였는가를 보시고 그에 상응하는 상을 주실 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노력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