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rd/† 영성의 향기

십자가의 성요한의 생애와 영성-2

ohjulia 2006. 10. 8. 01:00
2. 시대적 배경

스페인은 역사에 있어 16세기는 가장 활기에 넘친 시대였다. 그 유명한 부부 군주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도가 스페인을 하나의 통일 국가로 만들기 위해 투쟁을 하여 마침내 그 목표를 달생했던 것이다.
스페인의 본토는 태평연월을 이루었다. 스페인의 미술, 음악, 생활 양식은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스페인의 왕은 황제였다. 그 영향력은 사실상 전 유럽과 신세계에까지 미치고 있었다. 따라서 스페인 왕국은 부유하였다. 적어도 귀족들에게는 그러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빈곤이 국민의 대다수를 짓누르고 있었다.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이 두 계층은 나란히 공존하고 있었으나 각기 자기들 나름의 세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치고 갈라져 있었다.

참조 : 리차드 하디,『無에의 追求』, 대구 가르멜 수녀원 역, 왜관, 분도출판사, 1990, pp.14-15.

십자가의 성 요한이 살았던 16세기의 스페인은 풍부한 영성 문학과 놀라운 수의 성인들을 배출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스페인 영성사의 황금시대라고 일컫기도 한다. 영성신학에서 커다란 획을 그어 놓은 십자가의 성 요한의 영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 상황을 알아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16세기 스페인의 그리스도인들은 계시, 시현 또는 비상한 신비현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존경했으며 이런 현상들은 갈구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신자들에게 감명을 주기 위해 성흔이나 시현을 받았다고 가장하기도 했다.
한편, 이 시기에는 조명론(illuminism) 십자가의 성 요한은 환상을 좋아하고 교회의 지도자에게까지 이런 경향을 미치게 하는 조명주의자들을 바빌론의 탑을 세우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공격하였고 똘레도의 감방에서 신앙의 체험을 한 다음부터 그 생애의 마지막까지 “하느님께 이르기 위해 인생의 순례를 계속하는 진정한 길은 신앙의 길이며 이는 우리가 자신을 맡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설득하였다. 성령께서 하신 말씀이라든가 황홀 따위의 신심은 전혀 믿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신앙의 길은 하느님의 사랑에 이르는 길이었다.
이 급속히 전파되었던 시기이도 하다. 특별히 조명론은 수덕생활을 실천하지 않거나 덕행을 닦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성덕에 이르는 방법으로서 해이해진 수도원에서 크게 확산되었다. 이들은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모든 면들을 신비체험으로 하느님과 직접적인 일치를 하는데 장애물이거나 전혀 불필요한 것으로 배척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짜 신비주의 Jordan Aumann, 같은책, p.283 참조; i.e. “16세기 초 거짓 신비주의는 온갖 비윤리성과 거짓 시현, 가짜 성흔 및 거짓 탈혼으로 많은 추종자들, 특히 교육받지 않은 수도자 출신을 매혹시켰다. 1524년부터 스페인에서는 루터의교리가 점진적으로 유포되었는데 그것은 객관적인 윤리를 부인하고 선행을 거부하며 성령의 개인 감도를 주장하는 것 등이었다. 프란치스꼬회 및 도미니꼬회의 영성작가들이 가짜 신비가들의 과정을 바로잡으려 했으나, 1551년에는 더 엄격한 방편, 즉 스페인 종교 재판소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외에 스페인 영성의 황금시대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있다.
는 스페인 종교재판소의 엄중한 조사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십자가의 성 요한의 시성 문제에 있어서도 이러한 극단적인 신비주의가 의심의 대상이 되어 심사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통제하였던 종교재판소의 활약은 진정한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영성의 발전에 저해요소가 되었다. 이같은 당시의 제반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십자가의 성요한의 작품을 잘못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Jordan Aumann, 『가톨릭 傳統과 그리스도교 靈性』, 이홍근-이영희 역, 왜관, 분도출판사, 1991, pp.277-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