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Dedication of Saint John Lateran) **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 라테라노에 대성전을 봉헌한 것을 기념하고자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이 생겼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12세기부터 11월 9일을 그 기념일로 지내 왔습니다.
처음에는 로마에서만 이 축일을 지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교회가
‘전 세계와 로마의 모든 교회의 어머니이며 머리’인 이 대성전의 봉헌을
기념해 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베드로 사도좌에 대한 존경과 일치의 표지로 이날을 기념하게
된 것입니다.
-매일미사에서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의 라테라노에 대성전을
세워 봉헌한 것을기념하는 날이다.
전승에 따르면 12세기부터, 바로 오늘(11월 9일) 이 기념 행사를 해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로마에서만 이 축일을 지냈는데, 나중에 로마 전례를 거행하는 모든 교회가
"전 세계와 로마의 모든 교회의 어머니요 머리"인 이 대성전의 봉헌을 기념하여,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가 기록한대로, "사랑의 전 공동체를 이끄는" 베드로좌에
대한 존경과 일치의 표지로서 이날을 기념하게 되었다
현재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서기까지 로마에서 가장 중요한 성당으로 모든 성당들의
어머니였던 이곳은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요 로마의 주교좌 성당(Catedrale)
이기도 하다.
성당은 그리스도교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313년)에 의해 공인되자
교황 멜키아데가 교회를 일으키고 또한 교황들의 관저로 사용하기 위해 짓기
시작한 것인데 이를 위해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근처의 병영과 풀라우지 라테라노
(평민 가문으로서 집정관을 지냈으며 이 일대의 소유지를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기증함)의 소유지인 이곳을 기증했다.
<라테란 성당>이라는 명칭이 이에서 비롯되었음은 물론이다.
처음 성당은 구세주인 그리스도에게 헌정되었으나 여러번 손상을 입어 오다가
896년에는 드디어 지진으로 붕괴되는 불운을 겪는다.
결국 905년에 다시 개축을 본 성당은 이후로 세례자 요한과 사도 요한의 두 성자에게
바쳐지는데 특기할 것은 이곳에서 1300년 교황 보니파시오 8세( Boniface VIII,
1235-1303. 재위 1294-1303)에 의해 사상 처음으로 성년의 선포를 보게 된 것이다.
1307년 교황청이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겨간 후로 성당은 거의 방치상태에 놓이게
되고 1308년과 1360년에는 또다시 화재까지 입는 비운을 당한다.
그러다가 교황 인노센트 10세(Innocent X, 재위 1644-1655)때 1650년의 성년 행사를
앞두고 그 준비로 보르미니에게 개축을 명해 오늘날에 이른다.
현재의 성당 정면은 알렉산드로 갈릴레이의 작품인데 꼭대기에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 제자들과 교회 박사들의 상이 서있고 내부의 현관 왼쪽에는 최초의 그리스도교
황제인 콘스탄티누스의 대리석 상이 모셔져 있다.
길이가 130미터나 되는 내부는 그리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나 대신
장엄, 엄숙한 맛을 전해주고 있다.
중앙 제단은 특히 <교황의 제단>이라 불려 지는데 여기에는 성 베드로가 예배를
보던 테이블이 보관되어 있다.
때문에 이 제단에서는 오직 교황만이 미사를 집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제단 바로 위 천개에는 은을 입힌 성 베드로(오른쪽)와 성 바오로(왼쪽)의 흉상이
모셔져 있고 제단 밑에는 교황 마르티노 7세의 무덤이 있다.
제단을 중심으로 해서 양쪽 벽으로는 알렉산드로 알가르디의 작품이 부조되어 있는데
내용은 신약성서(오른쪽)와 구약성서(왼쪽)의 일화들이다.
이 위에는 다시 선지자들의 초상이 있고 그 밑의 벽감들 속에는 장엄한 규모를 띤
열 두 사도들의 대리석상이 들어 있는데 이는 건축가이며 조각가인 보르미니의 설계에
의한 것이다.
성당의 후진(Abside)을 압도하고 있는 거대한 모자이크화는 야고보 또리티와 야고보
다 까메리노의 작품으로 1288년과 1294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인데
그리스도교의 신자 생활을 암시하는 것으로서 그 의미는 매우 깊다.
성당에는 또한 사상 처음으로 성년을 선포하는 교황 보니파시오의 모습이 담긴 벽화가
보존되어 있는데 성당으로 돌면서 오른쪽 첫 벽 기둥위의 벽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지오또의 작품이다.
이 외에도 성당에는 13세기 초에 지은 부속 수도원이 딸려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