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의 성 마르티노](http://saint.catholic.or.kr/pict/627.jpg)
성 마르티노 (St.Martin) 주교
성인의 활동지역 : 투르(Tours)
성인의 활동연도 : 316?-397년
성인과 같은이름 : 마르띠노, 마르띠누스, 마르티누스, 마틴, 말딩
헝가리 판노니아(Pannonia)의 사바리아(Sabaria) 태생인 성 마르티누스(Martinus,
또는 마르티노)는 이교도 장교의 아들로 부모가 파비아(Pavia)로 전속될 때에는
15세였다.
이때 자신의 뜻과는 달리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고 로마(Rome)로 유학을 가서
그곳에서 예비자가 되었다.
아미앵에서 지내던 337년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거의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면서
성문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한 거지를 만났는데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입고 있던 옷과
무기밖에 없었다.
그는 칼을 뽑아 자기 망토를 두 쪽으로 잘라 하나를 거지에게 주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속에서 자기가 거지에게 준 반쪽 망토를 입은 예수가 나타나
“아직 예비자인 마르티누스가 이 옷으로 나를 입혀 주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이 신비 체험 후 마르티누스는 18세 때 세례를 받고 군대에서 제대한 후 푸아티에
(Poitiers)의 힐라리우스(Hilarius)를 찾아가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먼저 어머니를 개종시키고 또 수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했고,
일리리쿰(Illiricum)으로 와서는 공개적으로 아리우스파(Arianism)와 싸움으로써 매를
맞고 쫓겨나는 봉변을 당하였다.
그가 이탈리아로 돌아오니 이번에는 아리우스파이던 밀라노(Milano)의 주교로부터
추방되었다.
그는 잠시 갈리나리아 섬에 숨어 있다가 360년에 프랑스 지방으로 갔다.
여기서 그는 푸아티에의 주교인 성 힐라리우스로부터 도움을 받고 리귀제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이윽고 다른 은수자들이 그에게 몰려오므로 이 공동체는 갑자기 큰 공동체가 되었는데,
이것이 프랑스에서의 첫 번째 수도 공동체가 되었다.
이곳에서 10년을 지낸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나, 개인생활은 마르무티에(Marmoutier)에서 은수자로서 계속 생활하였다.
그가 정열적으로 주교직을 수행하니 이교 신전의 파괴와 개종이 잇달아 일어났다.
그는 또 계시와 환시로도 유명하며 예언의 은혜도 받았다.
또한 그는 프리실리아누스 이단을 격렬히 반대하고 격퇴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뒤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저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그는 프랑스 지방의
최고의 성인이며,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이전에 서방 수도원 제도를 개척한
탁월한 지도자였다.
순교자가 아니면서도 성인이 된 최초의 인물인 마르티누스의 경당은 유럽의 주요
순례지이다.
프랑스의 수호성인 중 한 분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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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의 근교에 있는 성 마르티노는 산 위에 세워진 거대한
수도원은 이 나라 가톨릭의 중심지라고 할만큼 창설 이래 천 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면면히 내려오는 유명한 곳이다.
이 산의 이름은 317년에 그 산밑에 위치한 사바리아에서 출생한 성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마르티노의 아버지는 로마군의 대령으로 북 이탈리아의 파비아에서 헝갈리에 전임되어
사바리아 시에서 근무했으며, 아들 마르티노를 로마에 유학 시켰다.
마르티노는 그곳에서 그리스도교를 알게 되어 아직은 예비 신자면서도 이집트의
은수자들을 존경했고 수도자가 되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세례도 받기전에 아버지는 불과 15세인 어린 소년을 군대에 입대시켰고,
군인으로서 프랑스에 주둔하게 되었다.
당시 로마군에는 가톨릭 신자가 많이 있었고, 그 중에는 후일의 영예로운 순교자도
섞여 있었다.
그런 훌륭한 사람을 본받아 마르티노는 근무 중에도 열심히 교리 공부를 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의 일이다. 그가 말을 몰고 아미안 교외로 나가자 난데없이
어느 가련한 거지가 나타나서 자선을 청했다.
원래 인정이 많은 그였는지라 무엇을 주려고 호주머니를 뒤져보았으나 불행히도
가진 돈이 없었다.
그러자 허리에서 장검을 빼어 자기의 외투를 서슴지 않고 반을 잘라서 거지에게 주었다.
그런데 그 날 밤 꿈에 그 외투 조각을 입고 나타난 이는 바로 예수였고 예수께서는
곁에 있는 천사에게 "이 외투는 아직 예비 신자인 마르티노가 준 것이다"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마르티노도 오늘 아침에 나타난 거지가 바로 예수였음을 생각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유명한 성인의 일화이다.
그후 오래지 않아 그가 간절히 바라던 세례를 받자 군대를 퇴역하고 그 당시 포아티에의
주교 성 힐라리오를 찾아가 사제 서품까지 받았다.
이때 마르티노는 혈기 왕성한 20세 청년이었다.
그는 아직도 신앙을 모르는 부모를 생각하니 그대로 견딜 수가 없어 그들을 진리의
품안으로 이끌기 위해 고향으로 갔다.
순박한 어머니는 아들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 곧 하느님의 자녀의 무리에 들었으나
완고한 아버지는 도저히 응하려 하지 않았다.
마르티노는 조금도 실망치 않고 온 힘을 다하여 전교했으며, 그 시에서 약간의 신자를
얻었으나, 아리우스파 이단자들의 미움을 사게되어 그들에게 잡혀 형벌을 받고 추방을
당했다.
마르티노는 하는 수 없이 힐라리오를 찾아가려 했으나 그도 역시 아리우스파에게
같은 공격을 당해 프랑수 국외로 추방되었다.
그는 할 수 없이 밀라노에 가서 수도원을 설립하려 했으나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않아
결국 제노아 건너편에 있는 작은 섬으로 건너가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360년에 소아시아 지방에 있던 힐라리오 주교가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로
귀환한다는 소식을 듣고 로마까지 마중나가 주교를 만나 동행했으며
그 주교로 부터 토지를 얻어 리귀제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서양에서는 가장
오래된 수도원 중의 하나이다.
마르티노에게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어느 날 예비 신자 한 사람이 세례를 받지 못하고 그냥 죽었다.
마르티노는 이것을 매우 애석히 여겨 하느님께 열렬히 자비를 베푸시기를 구하자
그 사람은 즉시 소생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적이 종종 있었으므로 그의 명성은 자연히 널리 퍼졌고 수도원을 창설한지
11년만에 투르의 주교가 서거하자 그 교구 성직자,신자 일동이 마르티노를 그 후임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겸손한 그는 그런 지위를 피하여 몸을 감추려 했으나, 결국 하느님의 의향임을
깨닫고 그 청원을 수락했다. 그때 그의 나이 54세였다.
그로부터 주교 재직 30년, 그는 부여된 모든 임무를 완수하는 한편, 권위있는 주교의
신부임에도 수도 생활에 대한 미련을 잊지 못하고, 부근에 수도원을 세우고 많은 동료들을
모집하여 그들의 스승이며 아버지가 되어 잘 지도했다.
당시 프랑스의 시골에는 우상 숭배자들이 더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르티노는
조리있고 열성있는 설교로 그 불합리성을 지적하여 납득시킴으로써 많은 우상 숭배자들을
진리의 품안으로 끌어들였다.
청년시기에 지녓던 큰 자비심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갔고 영육간의 고민으로 우는
자들의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 줌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겼다.
실지 빈민이나 죄수가 마르티노 주교에 의해 구원된 수는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성스러운 생활로 80의 고령을 맞이한 마르티노는 그의 교구의 맨 끝인 칸데 지방을
순시하는 도중 병을 얻어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제자들은 병상 머리맡에 모여 앉아 눈물을 흘렸고,
그는 하늘을 우러러 "주님! 제가 살아남은 것이 사람들에게 유익하다면 내 늙은 몸을
이끌고라도 얼마든지 일하겠습니다"했다.
임종시에는 마귀가 심한 유혹으로 괴롭히려 했으나
마르티노의 하느님께 대한 신뢰심은 반석같았고, 참으로 뭇 사람의 거울이 될만한
거룩한 죽음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비보가 전해지자, 거의 온 국민이 애도의 뜻을 표하는 동시, 포아티에와
투르 양 지방은 성인의 유해 쟁탈전까지 벌일 정도였다.
결국 성인이 주교로 오래 있었던 투르에서 장례식이 엄숙히 거행되어 거의 전시민이
이에 참가했으며, 특히 2천여 명의 수도자들의 장례행진은 주목을 끌었다.
마르티노는 프랑스의 사도와 주보 성인으로 추앙을 받고 있으며, 그 명성은 전교회를
통해 높아져 위대한 성인 중의 한 분으로 존경을 받는다.
(대구대교구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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