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오늘의 강론

2007년 2월 8일 목요일 여인의 믿음

ohjulia 2007. 2. 8. 08:03
고향으로(그리스도의 향기)

 

    제5주간 목요일 성 예로니모 에밀리아니, 또는 성녀 요세피나 바키타 동정 기념 마르코7,24-30 배부른 사람과 헛배가 불러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음식을 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불신과 시기로 배척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배부른 자녀들과 기쁜 소식의 부스러기라도 받아 먹으려는 굶주린 강아지, 다시 말해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는 한 이방 여인의 모습이 대조되어 있다. 예수님은 공생활동안 당신 반대편의 사람들과 갈등이 점점 고조되어 간다. 마침내 당신의 신변에 심각한 위험을 느낄 지경에 이르게 되시자 스스로 숨어 보호하시려 한다. 하지만 결국 알려지게 되는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숨어 계실 수 없었던 이유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개’라고 멸시를 하던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의 한 여인의 방문, 그리고 그 여인의 주님에 대한 충실한 믿음과 구원의 은총을 바라는 간절한 희망 때문이다. 복음서의 예수님은 그 어떤 유형의 소외나 노예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언제나 해방시켜 준다. 그리고 ‘마귀 들린 상태’란 인간을 소외시키고 얽어매는 그 어떤 힘에 붙들린 상태이며, 예수님은 지금 마귀의 권세를 빼내는 일과 직접 관련된 사건에 봉착해 계신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상스러운 행동으로 그 여인을 비참한 지경으로 몰아넣는다.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7, 27)라고 하시면서 평상시와 다르게 행동하신다. 그 런데 ‘숨는다’는 행위는 박해를 받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는데, 다름 아니라 예수님은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처럼 조롱과 멸시를 받으시는 상황에서 숨어 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에게서 발견되는 놀라운 일은 강아지들이 땅에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를 먹고 힘을 얻는 것보다 유대인들에게 경멸과 박해를 당하시고 계신 예수님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겸손한 신앙고백과 태도이다. 특히,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이 이방인 여인의 신앙고백에 유념해야 한다. 스승에게 대한 제자들의 동요, 사람들의 악한 표양, 정신병자로 취급하면서 보여준 가족과 친지들의 비겁함, 예수님의 활동을 마귀의 사주를 받아 행한다는 모함들을 비교해 볼 때, 비록 ‘개’라고 조롱과 멸시를 받지만 신앙고백만큼은 그 누구보다 진실했던 그 여인과 그런 신앙고백에 주님께서 어떤 구원의 결과를 주시는지 눈여겨보아야 한다. 마침내 그 여인의 고백 앞에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7,30)라고 표현되어지는 놀라운 결과를 보게 된다. 결국 자신을 강하게 맡긴 여인의 친밀하고 인격적인 신뢰가 구원의 은총과 당신 사랑을 일으키셨다.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예수님처럼 멸시와 박해를 받거나, 이 여인처럼 우리 자신 능력 밖의 일로 시련과 고통을 겪기도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결코 그 어떤 운명에 맡길 것이 아니라 믿음을 다시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참 믿음은 결코 좌절하지 않는 믿음이다. 참 믿음은 주님께서 아무런 응답도 안 해주시는 것 같은 침묵 속에서도 십자가의 사랑을 읽는다. 그래서 하느님께 믿음을 두는 행위는 결코 냉소적이거나 체념이 아니다. 수동적 체념이 ‘운명론’이라고 한다면, 믿음은 수동적 체념이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는 희망찬 의지이다. 그 어떤 죄의 힘보다, 그 어떤 고통의 무게보다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의 선하심이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을 우리도 이 여인처럼 가지게 되길 바란다. ▶ 부산교구 박기흠 신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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