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간 목요일
마르 8,27-33
오늘은 하느님과 우리들의 생각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들의 경험에도 자녀들이 잘못을 하거나 하면, 한번 만에 벌을 주기보다 여러 번 기회를 주고 그 기회를 다시 줄때마다 처음보다는 더 따뜻하게 배려합니다.
부모님 편에서 보다 좀 더 자녀들의 편에 서서 이야기하게 되고 다시 기회를 주고 시작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낳습니까.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입니다.
결국 이처럼 행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바로 하느님께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자녀 된 입장에서 보면 부모님께 불만도 많고 자신들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분으로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과 같이 우리 모두는 하느님에 대해서도 그럼 부모님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식들이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이 마음을 알아주겠지 하면서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시지 않습니까.
때론 그 방법이 자식들이 원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도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맺으시는 새 계약은 창조 때 맺으신 계약보다 더 풍부하시고 인간들에게 더 많은 유익을 주시며 사랑의 계약을 맺으십니다.
비단 이 계약은 사람뿐 아니라 전 피조물과 다시 맺으시는 생명의 계약입니다.
다만 인간이 사람이 피조물의 대표가 되어 맺은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에서 들려주시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오늘의 대목도,
역시 창조주 하느님께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이 자식들에게 그러는 것처럼
제자들에게 꼼꼼히 일러주시고 배려해주시고 때론 엄한 질책으로 깨닫게
해 주십니다.
오늘은 특히 엄청난 말로 꾸짖으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말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 나선 제자들에게 어찌 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사탄이라요,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것을 헤아려 주시지는 못할망정, 뭐가 제가 예수님을 생각해서 한 말이지,
뭐 제 편하자고 하는 말입니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해도 해도 너무하십니다.
이 마음은 우리가 생활해 오면서 가장 우리를 잘 알아 줄 것 같은 사람에게서
특히 부모님들께 어떤 형태로던지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오늘 베드로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때론 이런 충격적인 방법으로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베드로와 제자들의 생각을 고쳐주시고자 엄하게 질책하시고, 당신이 보여주시는 메시아의 모습을 하느님의 참모습을 잘 깨닫도록 하십니다.
그 표현을 오늘은 ‘사람의 일만 생각하지 말고 하느님의 일도 생각’하라 하십니다.
즉 이 말씀은 하느님과 사람을 모두 생각해서 행하라 합니다.
정말 너희들이 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다면 내가 오늘 하는 이야기를 잘 알아들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안락과 명예와 권위를 갖는 일이 아니라, 세상에서 버림받고 죽기까지 하면서 하느님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세상에 속하여 있었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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