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rd/† 聖人들의 삶을 통해서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6월 29일)

ohjulia 2007. 6. 29. 11:42


**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feast of Peter and Paul) **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고향으로
      
    성 베드로와 성바오로는 공동체를 위한 일치의 표지이며 구원의 표지입니다. 
    두 분은 로마시의 보호자이다.
    베드로 성인는 어부였고 이름이 시몬이었다. 
    네로 시대에 십자가에 머리를 밑으로 하고 거꾸로 순교 하였다.
    바오로 성인은 제일의 선교 사도이며 가장 중요한 선교사로써 67년 로마에서 머리를 
    잘려 순교하였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는 각각 64년과 67년에 순교하였으며, 그들의 무덤은 바티칸과 
    로마 성 밖 오스티아로 나가는 길가에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며 주님께 ’베드로’라는 이름을 받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는 약속을 듣는다.
    그는 형제들을 굳세게 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거친 인물에게 그토록 중요한 일을 맡기시는 하느님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베드로는 시험을 이겨 내지 못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베드로였기에,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걸려 넘어지는 형제들의 힘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바오로는 그리스도께 늦게 부름 받았지만, 많은 교육을 받았으며 활기있고 
    놀라운 힘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주님의 훌륭한 도구가 되었다. 
    어떤 시련도 그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었다.
    그는 씨 뿌리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었다. 
    서로 대조적인 두 인물이 똑같이 위대한 공헌을 하여 교회가 커 나가는 데에 
    주춧돌이 되었다.
    이것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주님의 신비이다. 
    로마 교회는 두 사도를 같은 날에 기념해 왔다.
    두 사도는 교회의 두 기둥으로 공경을 받아 왔으며, 옛 성화에도 함께 등장한다.
    보편 교회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에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정하여,
    성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전세계 모든 신앙인을 
    훌륭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주님의 도움을 청한다.
    사도 바오로
    
    성인의 활동연도 : +67년경  
    성인과 같은이름 : 바울로, 빠울로, 빠울루스, 파울로, 파울루스, 폴    
    베냐민 지파의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사도 성 바오로(Paulus)는 
    당대의 유명한 유대인 랍비 가믈리엘의 문하생으로 예루살렘에서 공부하였다. 
    그가 회심할 때까지는 사울이라 불렀다. 
    천막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던 그는 엄격한 바리사이파였고, 그리스도교의 열렬한 
    박해자였다. 
    그는 스테파누스(Stephanus)의 순교 현장에도 있었다.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그는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34-36년 사이). 
    이 환시는 그의 극적인 개종을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로 
    만들어 주었다. 
       그 후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지낸 후 설교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돌아왔다. 
    그는 즉각 유대인들의 맹렬한 반발에 직면하였는데 그에 대한 위협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레타(Aretas) 왕의 총독이 바오로를 잡으려고 성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밤을 이용하여 비밀리에 성벽을 타고 도시를 빠져나갔고, 39년경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났으며, 바르나바(Barnabas)의 지원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입적하였다. 
       그 후 그는 타르수스(Tarsus)에서 몇 년을 지내다가 43년경에 바르나바에 의하여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으며 그곳 교회의 교사가 되었다. 
    이것이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대 전교의 시초가 되었다. 
    45년경부터 바오로는 세 차례의 전교여행을 하게 된다. 
    45년부터 49년까지 그는 키프로스(Cyprus), 베르게, 비시디아 안티오키아, 
    리가오니아를 전교했고, 이 여행에서 이름을 바오로로 개명했다. 
    이 여행을 마치고 49년경에 예루살렘에 온 그는 베드로(Petrus)와 야고보 및
    다른 사도들을 설득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그리스도교회의 보편성 확립에 기여한 한편, 
    그의 이방인 선교를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하도록 하는 등 교회의 체제 면에서도 
    가일층 진보된 단계를 맞게 하였다.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직후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제2차 전교여행을 계획한다(49-52년). 
    제1차 전교여행에서 세운 교회들을 재차 방문한 뒤, 바오로는 마케도니아를 가로질러 
    갔고 최초로 유럽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는 필립비(Philippi), 테살로니카(Thessalonica), 베레아(Berea)에 교회를 세웠으나, 
    아테네에서는 ‘알지 못하는 신’을 비판하는 ‘아레오파고’ 법정 진술만 다소 효과를 
    내었을 뿐 신통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 후 안티오키아로 귀향한 그는 다시 제 3차 전교여행을 계획하였으나(53-58년), 
    2년 동안은 코린토스(Corinthos)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였으며, 에페수스(Ephesus)에서는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이 사건이 유명하다. 
    58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는 야고보를 만나 보았고, 이레 동안의 정결 기간이 거의 
    끝날 무렵에 그는 유대인들에게 곤욕을 치르다가 출동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자기의 개종을 설명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경위를 비롯하여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기도 하였으나, 60-61년 사이에 몰타(Malta) 연안을 따라 로마(Rome)에 갇히게 
    되었다. 
       로마의 클레멘스(Clemens)에 따르면 그 후 그는 에페수스, 마케도니아, 그리스 등지를 
    재차 방문했고(63-67년), 트로아스에서 또다시 체포되어 로마로 끌려가서 사도 베드로와 
    같은 날에 처형되었다(에우세비우스의 견해). 
    테르툴리아노에 의하면 그는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치명 하였다. 
       바오로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그리스도교 저술가로 꼽힌다. 
    로마서(코린토스에서 57-58년); 고린토 1서(에페수스에서 54년); 고린토 2서(필립비에서 
    57년); 갈라디아서(에페수스에서 54년); 골로사이서, 필립비서, 에페소서, 필레몬서(로마에
    서 61-63년); 데살로니카1, 2서(코린토스에서 51-52년) 및 사목서간인 디모테오서와 디도서
    를 보냈다. 히브리서는 아마도 다른 저자인 듯하다. 
    공식 축일은 6월 29일이고, 개종 축일은 1월 25일에 지낸다. 
    사도 베드로
    
    성인의 활동연도 : +64년경  
    성인과 같은이름 :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티베리아 호수에 인접한 마을 베싸이다 출신인 사도 성 베드로(Petrus)는 시몬이라 
    부르는 요한(Joannes)의 아들로서 겐네사렛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 
    그의 아우 안드레아(Andreas)가 그를 예수께 소개했는데, 예수는 그에게 아라메아어로 
    베드로와 같은 뜻인 ‘게파’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요한 1,35-42). 
       그는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베푼 그리스도의 첫 번 째 기적이 일어난 곳을 비롯하여, 
    자신의 장모가 치유되는 장면 등을 목격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면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십니다.”(마태 16,16) 하고 고백할 때, 주님은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 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하셨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가톨릭 교회는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며 교황권의 우위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이해한다. 
    베드로는 다른 어느 사도들보다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며, 그리스도의 주요 행적에도 항상 
    그가 함께 자리한다. 
    또 대사제의 관저에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한 사실도 있다. 
    어쨌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승천 후 신도들의 우두머리이고, 유다(Judas)의 후계자를 
    임명했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사도이자, 기적을 행한 첫 사도이며, 
    설교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킨 사도였다. 
    베드로는 43년경에 헤로데 아그리파에 의하여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인도를 받아 피신하였고, 
    예루살렘 회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만인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를 원하신다고 강조하였다. 
       초기 전승에 의하면 그 후 그는 로마(Rome)로 가서 초대주교가 되었고,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인 64년경에 바티칸 언덕에서 역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했다.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는 그분의 무덤이 있다. 
    순교 직전에는 저 유명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로 널리 알려진 주님의 발현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