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오늘의 강론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ohjulia 2010. 7. 10. 00:32




    <연중 제14주간 토요일>(2010. 7. 10. 토)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마태 10,32-33)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으면,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말한 일이 금방 생각납니다.

     

    성경에서 ‘안다.’ 라는 말은 단순히 지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일치, 관계 등을 뜻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한 것은

    ‘나는 저 사람과 아무 상관이 없다.’ 라는 뜻이고,

    예수님과의 관계를 말 한 마디로 끊어버린 일이 됩니다.

     

    고해성사 중에 “지는 아무것도 몰라유.” 라고 말하는 노인들을 자주 만납니다.

    성경도, 교리도, 기도문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 누구보다도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지식으로 잘 아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일치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성경책을 통독해서 그 내용을 다 알고 있고,

    교리서와 교회법전과 공의회 문헌을 다 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가끔 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식은 많지만 믿음이 없고,

    그 삶도 하느님이나 예수님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전에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했던 시장이 생각납니다.

    그는 자칭 신앙인이었지만 그 삶의 모습은 신앙인이 아닙니다.

    서울시가 자기 것입니까? 자기 것이 아닌 것은 봉헌할 수 없습니다.

    남의 것을 봉헌하는 것은 도둑질한 것을 봉헌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안다고 증언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답게 살고, 삶으로 믿음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묵주반지를 끼고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다닌다고 해서 신자인 것은 아닙니다.

    자동차에 십자고상, 성모상을 붙여놓고 다닌다고 해서 신자인 것은 아닙니다.

    신자답게 살아야 신자입니다.

     

    로만칼라를 하고 있다고 해서 성직자인 것은 아닙니다.

    그거야 돈 몇 푼만 주면 쉽게 살 수 있습니다.

    성직자답게 살아야 성직자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자기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선언한다는 뜻이지만,

    넓은 뜻으로는 신자답게 살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1코린 2,15)

     

    신앙인은 세상의 악취를 제거하는 탈취제가 되어야 합니다.

     

    또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필리 2,15)

     

    신앙인은 세상을 인도하는 향도성(嚮導星 -길잡이 별)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방황할 때,

    신앙인이 그들을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기의 삶으로.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누가 누구에게 길을 묻고 있습니까?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