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간 월요일>(2010. 10. 25. 월)(루카 13,10-17)
<안식일에 해야 하는 일>
탈출기 20장에 기록되어 있는 십계명을 보면,
안식일에는 아무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5장에 기록되어 있는 십계명을 보면,
안식일에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과 함께
“너의 남종과 여종도 너와 똑같이 쉬게 해야 한다.”
라는 말이 더 있고, 종들도 쉬게 해 주어야 하는 이유가 덧붙여져 있습니다.
신명기에서 안식일에는 종들도 쉬게 해 주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도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했고,
하느님께서 그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날인 안식일에는 종들에게 일을 시키지 마라.”
탈출기에서는 아무도,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강조점이 있고,
신명기에서는 모두가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는 인권 보장, 사랑의 실천을 더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탈출기의 안식일 규정과 신명기의 안식일 규정이 모순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명기의 규정은 탈출기의 규정을 설명한 것뿐입니다.
즉 안식일의 근본정신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신 것은
신명기의 규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신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당장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는 일을 반대하는 것은
탈출기의 규정을 소극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지키고 있지만, 그 정신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주일은 무조건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주일은 미사에 참례함으로써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고,
그 다음에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날입니다.
만일에 공장 사장이 자기는 주일 미사 참례를 하면서
노동자들에게는 주일에도 계속 공장에서 일을 하도록 시켰다면
주일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노동자들이 아니라 공장 사장입니다.
만일에 학교 선생님이 자기는 주일 미사 참례를 하면서
학생들에게는 주일에도 하루 종일 학교에서 공부를 하도록 시켰다면
주일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학생들이 아니라 선생님입니다.
주일미사에 참례하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하루 종일 어떻게 지냈든지 간에
주일을 지킨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반대로 주일 하루 동안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에 상관없이
미사 참례를 안 했다면 주일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일률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특히 주일 미사 참례를 안 한 것과 못한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주일미사 참례를 못했고, 고해성사도 못 보았고,
그러니 영성체도 못하고, 영성체를 못했으니 미사 참례를 제대로 한 것이 아니고...
이런 식의 악순환을 거듭하다가 결국 냉담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율법주의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근본정신을 모르고 글자에만 매달려 있는 것이 율법주의입니다.
그런 율법주의자가 예비신자 교리를 가르치면 배운 사람도 율법주의자가 됩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 냉담자가 많은 것도 그런 율법주의적인 태도가 한 몫을 할 것입니다.
안식일은(주일은)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날입니다.
주일미사 참례를 했다고 해서 주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그날 하루를 온전히 거룩하게 지내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일을 해야 주일을 지킨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그대로 따른다면
병원과 약국은 주일에도(주일에는 특히 더) 문을 열어야 합니다.
병자를 치료하는 일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불우이웃돕기도 주일에 해야 할 일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중에 엿새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먹고살기 위해서 일하는 날입니다.
주일은 자기를 버리고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서 사는 날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어서 주님의 날, 주일이라고 부르지만,
그 정신을 생각한다면 ‘사랑의 날’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을 율법주의의 억압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율법주의의 노예가 되려고 합니다.
주일은 모든 노예상태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날, 기쁨의 날, 자유의 날입니다.
그리고 주일의 근본정신은 바로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