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에드워드 신부님의 ..

떠남

ohjulia 2005. 8. 16. 05:49
떠남


고향으로(그리스도의 향기)

살다가 보면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많다. 가진 것에서 떠나고 싶고, 있는 곳에서 떠나고 싶고, 하던 일에서 떠나고 싶다.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쉽게 떠나지를 못한다. 가진 것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유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내려놓고 놔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떠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디에 가 있으나, 무엇을 하나 새로운 구속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떠나는 것은 버리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버림으로 얻게 된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있던 곳(고향)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간다. 아브라함이 떠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 때문이다. 그 믿음으로 그는 온 세상을 얻었다. 또 다른 떠남이 있다. 루가 복음에 나오는 작은아들은 아버지를 떠난다.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고 아버지는 아들을 떠나 보낸다. 예수께서 체포되시기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난다. 유다스는 배반으로 예수를 떠나고 예수께서는 유다스로 하여금 배반하도록 떠나 보낸다. 베드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당연히 '떠나보내는' 아버지와 예수이다. 모든 것을 떠난 존재는 떠나 보낼 줄도 안다. 그에게 떠남과 떠나보냄이 하나로 만나고 있다. 하지만 작은아들이나 유다스와 베드로는 떠났어도 자유롭지 못하다. 떠나보내는 마음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떠나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나 배반을 앞둔 제자들을 바라보는 예수의 시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롭다. 모든 것을 떠나 있기에 한결같다. 베드로를 바라보는 예수의 시선은 마치 이렇게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네가 나를 떠날 줄 알았다. 네가 떠날 줄 알면서도 난 너를 사랑했다. 넌 나를 떠나도 난 너를 떠나지 못한다. 떠나보내는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거기엔 자비와 사랑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을 뿐이다.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 왔을 때 질책이나 경고 대신 큰 잔치를 베푼다. 때문에 예수는 돌아온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신다.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온 아들은 아버지의 떠나보냄을 깨달으면서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주님의 십자가로 돌아온 베드로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도 이제 스승처럼 모든 것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이다. -신부님의 다른 글은 함부르크 한인 성당 "www.mannam.de" 이 제민 신부님의 인생 낱말 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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