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착한 행동을 많이 하는 주일이 되세요.

ohjulia 2005. 8. 28. 05:04
2005년 8월 28일 연중 제22주일 가해

제1독서 예레미야 20,7-9
주님, 저는 어수룩하게도 주님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주님의 억지에 말려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웃음거리가 되고, 모든 사람에게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저는 입을 열어 고함을 쳤습니다. 서로 때려 잡는 세상이 되었다고 외치며, 주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 덕에 날마다 욕을 먹고 조롱받는 몸이 되었습니다.
‘다시는 주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말자. 주의 이름으로 하던 말을 이제는 그만두자.' 하여도, 뼛속에 갇혀 있는 주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견디다 못해 저는 손을 들고 맙니다.


제2독서 로마서 12,1-2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자비가 이토록 크시니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드릴 진정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사람이 되십시오. 이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도록 하십시오.


복음 마태오 16,21-27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 주셨다.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리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때에 그는 각자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 줄 것이다.”





텍사스의 돈 많은 목장주가 세계 여행을 하면서 영국의 버킹검 궁전 앞에까지 왔습니다. 화려한 궁전을 밖에서 보면서 그는 안으로 들어가 실내의 모습도 보고 싶었지요. 그래서 궁전을 지키고 있는 병사에게 1,000 달러짜리 지폐를 주면서 “이 정도면 들어가겠지?”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떳떳하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해요. 하지만 병사는 그를 가로 막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을 주어야 왕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초청장을 주셔야 왕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즉, 초청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1 달러도 없어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지만, 당신처럼 초청장이 없는 사람은 1,000달러 아니 10,000달러를 가져와도 왕궁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 돈 많은 목장주인은 돈이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하지만 돈으로 될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는 것이지요. 하느님 나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이 세상에서 벌어들인 재화가 필요할까요? 그래서 부자는 하느님 나라도 쉽게 들어갈까요?

오히려 부자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힘들다고 말씀하셨지요. 다시 말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데는 현세의 재물이 내게 더 큰 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 세상 것을 너무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으며, 이 세상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을 하고, 그 판단에서 벗어날 때에는 반대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펄쩍 뛰면서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반대의 의견을 내놓습니다. 사실 베드로의 이 모습은 인간적인 기준으로 볼 때,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사랑하고 존경하는 스승이 고난을 당하고 결국은 죽임까지 당한다고 하니,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고난과 죽음을 이렇게 미리 알 수 있다면, 미리 피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반대의 의견을 내놓는 베드로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자기를 생각하고 한 말도 아닌데, 스승님을 생각했고 스승님이 걱정되어서 한 말인데, 어떻게 ‘사탄’이라고 표현하실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오늘 복음의 바로 직전(지난 주 복음)에는 ‘베드로’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시면서, 교회의 반석으로 삼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180도 바뀔 수가 있다니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라 할지라도 ‘사탄’이라는 호칭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얼마나 자주 주님께 ‘사탄’이라는 호칭을 듣게 되는지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 세상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생각하고 판단함으로써 점점 주님께 멀어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을 따르는데 그토록 열심했던 베드로도 ‘사탄’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 ‘사탄’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요?

조금 걱정이 되네요. ‘사탄아, 물러가라’는 말을 예수님으로부터 계속 듣게 되는 것 같아서…….


착한 행동을 많이 하는 주일이 되세요.



기쁨을 주는 삶('좋은 글' 중에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한 사람이라도 기쁘게 해 주어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햇빛은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줍니다.
웃는 얼굴은 햇빛처럼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주고 사랑을 받습니다.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려면
먼저 찌푸린 얼굴을 거두고
웃는 얼굴을 만들어야 합니다.

명랑한 기분으로 생활하는 것이
육체와 정신을 위한 가장 좋은 건강법입니다.
값비싼 보약보다 명랑한 기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약효를 지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