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자신의 잠자리를 잘 정돈합시다

ohjulia 2005. 8. 30. 06:40
2005년 8월 30일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제1독서 데살로니카 1서 5,1-6.9-11
형제 여러분, 그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날이 마치 밤중의 도둑같이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태평 세월을 노래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들이닥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해산할 여자에게 닥치는 진통과 같아서 결코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암흑 속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그날이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대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 있읍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당신과 함께 살 수 있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미 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도와주십시오.


복음 루가 4,31-37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의 마을 가파르나움으로 내려가셨다. 거기에서도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그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듣는 사람마다 그 가르침에 경탄하여 마지않았다.
때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가 들린 한 사람이 와 있다가 큰 소리로 “나자렛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십니다.” 하고 외쳤다.
예수께서는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썩 나가거라.” 하고 꾸짖으셨다. 그러자 마귀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사람을 쓰러뜨리고 떠나갔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놀라며 “정말 그 말씀은 신기하구나!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명령하시니 더러운 귀신들이 다 물러가지 않는가!” 하면서 서로 수군거렸다.
예수의 이야기가 그 지방 방방곡곡에 퍼져 나갔다.





저에게는 아주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것도 좋은 버릇이 아니라, 아주 나쁜 버릇이랍니다. 글쎄 차만 타면 조는 이상하면서도 나쁜 버릇이 생긴 것입니다. 물론 차를 타면 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운전을 하면서도 존다는 것에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며칠 전에는 인천에서 제가 있는 갑곶성지까지 오는데 자그마치 4시간이나 걸렸답니다. 왜냐하면 졸음이 와서 거리에 차를 세워 놓고 잠을 잤거든요. 그런 식으로 두 차례를 잠을 자고서 집으로 들어오니 4시간이나 걸리더군요.

아무튼 졸면서 운전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에, 저는 이런 식으로 길거리에 잠시 주차를 시킨 뒤에 약간의 휴식을 취합니다. 그런데 그 휴식이 때로는 3시간 이상 될 때도 있더군요. 그만큼 차 안에서 오랫동안 잠을 잔다는 것인데요. 참 이상한 것은 그렇게 잠을 자면 잔 것 같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시간상으로는 내 침실에서 잠든 시간과 별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침실과 차 안에서의 잠은 피로를 해소하는데 있어서도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즉, 차 안에서는 몇 시간을 자도 피곤하고, 침실에서는 약간의 잠으로도 피로를 풀 수가 있지요.

문득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님 아래에 있을 때에야 참된 평화와 행복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다른 곳에서 그 평화와 행복을 찾고 있지요. 이 세상의 부와 명예에서 그 행복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 안에는 오히려 미움과 원망, 다툼 등만이 자리를 잡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오히려 주님을 원망을 하고 주님께 따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귀들린 사람이 예수님께 나타나 따집니다.

“나자렛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세상의 것을 쫓으면서 보다 더 주님의 뜻에 따라 살지 못하는 우리들의 주님께 대한 원망이 아닐까요? 즉,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 당신이 우리들의 구세주라는 것은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이 세상 것을 버리라고 합니까? 저는 이 세상 것이 너무나 좋고, 이 세상 것 안에서 기쁨을 얻습니다. 그런데 왜 저희를 간섭하면서, 그런 것들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이러한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썩 나가거라.”하고 꾸짖으시지요. 그런 말은 더 이상하지 말고, 이제 악한 마음에서 벗어나라고 하십니다.

주님 아래에 머물러야 참된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잊었을 때, 우리 역시 마귀의 지배를 받게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자신의 잠자리를 잘 정돈합시다.



나는 배웠다(오마르 워싱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 뿐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이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신뢰를 쌓는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것을 나는 배웠다.

인생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달려있음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문제인가도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 자신을 비교하기보다는
내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그리고 또 나는 배웠다.
인생은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무엇이 아무리 얇게 베어난다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아야 한다는 것을...
어느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의 만남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우는 자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웅임을 나는 배웠다.
사랑을 가슴 속에 넘치게 담고 있으면서도 이를 나타낼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음을 나는 배웠다.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우리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진정한 우정은 끊임없이 두터워진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그리고 사랑도 이와 같다는 것을...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서 나의 모든 것을 다해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님을 나는 배웠다.
또 나는 배웠다.
아무리 좋은 친구라고 해도 때때로 그들이 나를 아프게 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고 내가 내 자신을 때로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환경이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의 책임인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우리 둘이 서로 다툰다고 해서 서로가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님을...
그리고 우리 둘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나는 배웠다.
밖으로 드러나는 행위보다 인간 자신이 먼저임을 나는 배웠다.
두 사람이 한가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도 나는 배웠다.
그리고 또 나는 배웠다.
앞과 뒤를 계산하지 않고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서 앞선다는 것을...
내가 알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에 의하여 내 인생의 진로가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이제는 더 이상 친구를 도울 힘이 내게 없다고 생각할 때에도 친구가 내게 울면서 매달릴 때에는 여전히 그를 도울 힘이 나에게 남아 있음을 나는 배웠다.
글을 쓰는 일이 대화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마음의 아픔을 덜어준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내가 너무나 아끼는 사람들이 너무나 빨리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그리고 정말 나는 배웠다.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과 나의 믿는 바를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한다는 것, 그러나 이 두 가지 일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것의 그 모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