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루카12,51)
세상에 불은 지르러 오셨다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의외로 느껴지고
낯설기조차 합니다.
진리 자체이신 당신께서 오신 이제부터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질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예견하십니다.
가족 간의 유대를 바라고 평화를 원하며, 갈라져서 다투기보다는 화합하여 잘 살기를
바라는 우리의 소망과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고 계시지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다는 이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이며 이 말씀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되는지 묵상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평화를 원하고 화합을 소망합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그와는 많이 다르지요. 참 평화를 위해서는 분열을
각오해야하고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다툼은 일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이곳저곳에서 뇌물을 받고 문제를 일으킨 공무원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우리나라의 부패지수가 세계 40위라는 이야기도 있지요.
살아가는 정도에 비해서 부패의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관행처럼 굳어진 우리 사회의 부패 고리를
안타깝게 이야기합니다.
교묘히 뇌물을 요구하고 따르지 않으면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서 인허가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몇 몇 생각 있는 사람들은 이런 안타까운 모습들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들추어내고
있습니다. 한편에는 왜 자꾸 문제거리를 들추어내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느냐고
불평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세상은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고 말하며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슬그머니 넘어가려고 하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부패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면 우리 모두가
망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선은 시끄럽고 불편해도 부패와 부정의 고리는 들춰내어 끊어야 합니다.
끊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큰 비극이 만들어져서 감당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는 다른 이런 부정과 불의에 대해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갈라지고
딸과 어머니가 갈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때에야 참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여기에 가장의 직업이 “도둑”인 가정이 있다고 합시다.
수많은 도둑이 활개치고 다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그런 가정도 많을 것입니다.
그 가정의 어머니는 남편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대충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른 척하고 있으면 그 집안은 불화와 갈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큰 소리를 내며 싸우더라도 가장이 성실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가는 것, 잠깐의 불화를 겪더라도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 가라는 것이
바로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평화를 꿈꾸고 화합을 원하며 진리를 추구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불의와 부정이 가득한 사회 구조에서는 결코 이룰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그것이 이 사회 구조를 참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구조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얻기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평화를 원한다면서 하느님 안에 있지 않고 시끄러운 세상에 가 있다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없지요.
예를 들어서 조금 더 빨리 진급하기 위해서 윗사람에게 뇌물을 바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평화가 존재하겠습니까? 아마도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릴 것입니다.
누군가 뇌물 수수로 적발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할 것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는 것이 평화를 얻는 길입니다.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남에 대해서 쉽게 말하는 우리 언행도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생각 없이 한 말 한마디로 남의 가슴에 상처를 내놓고 본인은 평화를 누리기를 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지요.
참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며 바르게 행동하면서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평화는 다가올 것입니다.
“주님, 저에게 평화를 주십시오.” 기도하면서 평화를 줄 수 없는 것들, 돈이나
건강이나 세상의 명예 따위에 마음을 두고 있다면 결코 평화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부쩍 “웰빙”을 얘기하면서 운동을 하고 외모를 가꾸면서 오히려
끊임없이 건강을 걱정하는 건강 염려증에 시달립니다.
변하는 곳에서 어떻게 평화를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나이를 먹으면 자연히 주름살이 생기고 신체는 위축이 되기 마련입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줄 수 있는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옛날 수도자들이 자주 사용했던 비유 중에 “마음의 문지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선하고 정의로우며 선한 생각이고 남을 위한 생각이라면 스스로
받아들이고, 반대로 탐욕적이고 이기적이며 비판적이고 세속적인 것이라면 마음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나 스스로가 먼저 닫아버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야만 스스로가 휘둘리지 않고 하느님 안에서 평화를 누리면서 살수 있기 때문이지요.
정말 참 평화를 원한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 어디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지,
주변 환경은 어떠한지 등을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바르게 생각하지도, 바르게 말하지도, 바르게 행동하지도 않으면서 참 평화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세속적이고 탐욕적이며 오로지 세상과 육신에만 관심이 있는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평화를 얻을 수는 없지요.
우리 시대는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만 사실은 안타깝게도 너무나 어리석기만
합니다.
평화를 줄 수 없는 곳에서 평화를 찾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재물이나 육신, 세상의 성공들은 우리에게 결코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끊임없는 불안과 갈증만을 줄뿐입니다. 참 평화는 하느님 안에서, 그리고 변하지
않는 것들 안에서, 또 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은총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느님과는 거리가 먼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며 바르게 말하면서 바른 곳에 관심을 가질 때 참 평화를
누리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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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말씀의 제목은 제가 임의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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