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알아서 합시다.

ohjulia 2006. 1. 3. 08:37
2006년 1월 3일 주님 공현 전 화요일

제1독서 요한 1서 2,29
--3,6
사랑하는 여러분, 29 하느님께서 의로우신 분이심을 깨달으면,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3,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4 죄를 저지르는 자는 모두 불법을 자행하는 자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5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복음 요한 1,
29-34
그때에 29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얼마 전, 어느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점에는 손님들이 상당히 많았고, 그래서인지 물 한 잔 건네주지도 않는 것입니다. 저는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물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주문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물을 제게 주지 않는 것입니다. ‘나를 무시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뒤, 제가 주문했던 음식이 나왔지요. 저는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물 좀 갖다 주세요.”

그러자 그 점원은 벽면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손님, 물은 셀프(Self)입니다.”

맞습니다. 물은 스스로 가져다 마시라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벽면에 쓰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다른 음식점과 달리 물을 갖다 주지 않는다고 화가 나있었던 것이지요. 글씨도 제대로 읽지 않고 화를 내었던 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던 지요. 그런데 그 순간 이러한 생각이 들더군요.

‘셀프 서비스’라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을 뜻합니다. 강요하거나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는 것을 ‘셀프 서비스’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도 ‘셀프’라는 말을 우리들의 마음 속에 붙여놓고서 우리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즉, 우리의 신앙생활도 투철한 셀프 서비스의 정신으로 무장되어서, 스스로 용서하고 스스로 사랑하며 스스로 감사하면서 생활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각자에게 ‘자유의지’라는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셀프(Self)’라는 말을 보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주님께 원망만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증거를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우선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보다 나이가 더 많지요. 더군다나 그 당시에는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보다도 더 인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자기보다 손아랫사람이고, 자신의 인기를 가져갈 사람을 위해서 증언의 말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자 요한은 스스로 그러한 증언의 몫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인 ‘셀프(Self)'의 정신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것을 요구하십니다. 자신이 나서기 전에 우리들 스스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감사하면서 기쁘게 살라고 말입니다.

셀프서비스는 서비스의 일부를 고객 스스로 하도록 하고, 그에 상당하는 절약 분만큼 가격을 내려 판매하기 때문에 손님은 구매 가격의 이득을 보게 되지요. 주님도 우리가 이렇게 스스로 알아서 할 때, 더 큰 은총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투철한 셀프서비스 정신으로 무장되기를 바랍니다.


알아서 합시다.



어느 목수 이야기('좋은 글' 중에서)

한 나이 많은 목수가 은퇴할 때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고용주에게 지금부터는 일을 그만 두고 자신의 가족과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고용주는 가족들의 생계가 걱정되어 극구 말렸지만 목수는 여전히 일을 그만두고 싶어했습니다.

목수는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였습니다.

고용주는 훌륭한 일꾼을 잃게 되어 무척 유감이라고 말하고는 마지막으로 손수 집을 한 채 더 지어 줄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목수는 "물론입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일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형편없는 일꾼들을 급히 모으고는 조잡한 원자재를 사용하여 집을 지었습니다.

집이 완성되었을때, 고용주가 집을 보러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집을 보는 대신 목수에게 현관 열쇠를 쥐어주면서 "이것이 당신의 집입니다 오랫동안 당신이 저를 위해 일해준 보답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목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리고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만일 목수가 자신의 집을 짓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마도 그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집을 지었을 것입니다.

100년이 지나도 수리를 할 필요가 없는 튼튼한 집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수리할 필요가 없는 훌륭한 집에서 살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기보다는 단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차선책으로 견디려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하여 최선을 다해 일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상황 자신이 대충 지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결코 유쾌하지 못한 사실에 놀라곤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인생이라는 집을 나의 집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집을 지을 것입니다.

우리가 못을 박고 판자를 대거나 벽을 세우는 매 순간마다 정성을 다해 지을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 집은 우리가 만들러 갈 인생과도 같은 것입니다.

단 하루만 살게 되더라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필요가있습니다.

오늘의 모습은 과거에 선택한 것이며 그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내일의 삶은 바로 지금의 태도와 선택의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모든것은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