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눈에 띄지 않게 이웃에게 도움을 주도록 합시다.

ohjulia 2006. 1. 2. 08:01
2006년 1월 2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요한 1서 2,22-28
사랑하는 여러분,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23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아드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야 아버지도 모십니다.
24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26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28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 요한 1,19-28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성탄미사와 송년미사를 봉헌하면서 제 자신이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있는 곳은 성지로 일반 본당도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당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분들이 오셨고, 그분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렇게 좋은 시간을 간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분들도 상당히 많지요. 만약 이런 분들이 없었다면 성탄과 송년미사를 제대로 봉헌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바로 저의 능력이 아닌 다른 사람의 능력과 정성을 통해서, 성탄과 송년의 밤을 멋지게 장식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제가 있는 성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본당에서도 뒤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각종 행사를 치룰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항상 앞에 드러나는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고, 자신 역시 그 앞에 드러나는 몫을 차지하려고 그렇게 애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앞을 차지 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더군다나 그렇게 앞을 차지하려 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재능으로 이루었다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신 내 자신도 모르게 나를 도와주는 또 다른 이웃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라도 될 수 있었음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조차도 혼자서 모든 것을 하지 않으셨지요. 당신의 일을 도와주는 제자들이 있었고, 당신을 따르는 많은 군중들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당신의 일을 미리 준비한 세례자 요한도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도 다른 이의 손길을 필요로 하셨고, 그 손길에 대해서 은총과 사랑으로 보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다른 이의 손길을 어떻게 대하고 있으며, 어떻게 보답하고 있나요?

당신을 미리 준비한 세례자 요한, 그리고 당신을 따랐던 제자들과 군중들로 인해서 역사의 한가운데 서셨던 주님께서는 이제 우리들의 뒤에서 우리들을 밀어주고 계십니다. 어렵고 힘들어서 이제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절망의 순간에서 힘과 용기로 우리의 뒤를 봐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으로 직접 주님을 바라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단지 조용히,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우리를 끊임없이 도와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역시 그러한 몫을 차지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즉, 이 세상의 또 다른 세례자 요한의 모습으로써, 또 다른 주님의 모습으로써, 내가 만나는 이웃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라고 하십니다. 부모에게, 자녀에게, 형제에게, 이웃에게……. 그들의 뒷 배경이 되는 것. 비록 눈에 띄지 않는 행동이지만 의미 있는 행동이 아닐까요? 더군다나 그 보상을 주님께서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까요.


눈에 띄지 않게 이웃에게 도움을 주도록 합시다.



새로운 길(이예진, '꽃이어서 행복해라' 중에서)

세월의 흐름 따라 걸어가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길이 막히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낙담하지 말고
다른 길을 찾도록 해봐요

온 길을 되짚어 다른 시각으로
생각만 조금 바꾸고 나면
더 좋은 길이
분명히 생각날 거예요

새로운 길을 걷노라면
고개 들어 하늘을 보듯
더 푸른 하늘엔 눈부신 태양
구름 속에서도 빛이 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