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요한 1서
3,7-10 7 자녀
여러분, 아무에게도 속지 마십시오.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이는 그분께서 의로우신 것처럼 의로운 사람입니다. 8 죄를 저지르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가 한 일을 없애 버리시려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9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10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는 이렇게 뚜렷이 드러납니다. 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도 그렇습니다.
복음 요한
1,35-42 그때에 35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36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38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3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41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42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어제 점심 식사를 한 뒤에 포만감에 저의 배를 만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제
배가 엄청나게 나왔다는 것이었지요. 하긴 성탄과 송년을 지내면서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체중이 늘은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곧바로 운동을 하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사실 전에 이 자전거를 타고서 하루에
20Km 정도 다님으로써 체중을 많이 줄였거든요.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 그래서인지 더욱더 상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2Km 정도 갔을까요? 힘이 들기 시작합니다. 특히 맞바람을 안고서 자전거를 타야 하니 더욱 더 힘들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작심삼일도 아닌, 작심한시간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에 꾹 참고서 계속해서 자전거 페달을 돌렸습니다.
결국 첫날이라 15Km 정도의 거리만 갔다 왔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거리도 제 몸에서는 ‘힘들어 죽겠다’고 난리를 치더군요.
그리고 마음속에는 ‘내일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까지 드는 것입니다. 아무튼 땀을 많이 흘렸기 때문에 욕실로 얼른 가서 샤워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기분이 얼마나 좋던지요. 자전거를 타는 그 과정은 힘들지만, 땀을 흘리고 난 뒤의 상쾌함으로 모든 것을 잊을 수가 있었고 그래서
내일도 또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결심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다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과정은 늘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모두 마친 뒤의 성취감으로 인해서 우리들은 그 과정의 힘듬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제자가 예수님께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이 말은 곧 당신을 따르겠다는 암시적인 표시인 것이지요. 이에
우리 같으면 보통 자세한 설명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예수님은 무명에 가까웠으니까요.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해서 나를 따르라고 자세히 말씀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다르십니다.
“와서
보아라.”
당신이 직접 이끌어주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그 과정을 직접 행한 뒤에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즉, 주님을
따르는 어려운 과정을 스스로 이겨내야 주님을 뵐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앞서 자전거 타는 과정은 힘들지만 샤워할 때의 상쾌함으로 다시 자전거
타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당신을 만남으로써 얻는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떤가요? 그 어려운 과정마저 주님께 모두 맡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물론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어려움에 대해서 가만히 있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바로 우리들을 위해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와서 보아라.”
힘들어도 이겨냅시다. 분명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꺼에요.
적은 부자(솔로몬
아이븐 가비롤) 어느날 왕이 신하에게 말했다.
"왜 그대는 필요한 것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도움을
청하지 아니하는가."
그때 신하가 대답했다.
"나는 폐하보다 더 부자인데, 어떻게 폐하에게 어떤 도움을 청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대는 나보다 더 부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때 신하는 분명하게 말해 주었다.
"폐하는 재산이 많아도 만족하시지 못하지만 저는 가진 것이 적어도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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