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체중 조절을 합시다. 체중을 늘릴 분은 늘리시고, 줄이실 분은 줄이시길…….

ohjulia 2006. 2. 11. 05:57
2006년 2월 10일 연중 제5주간 토요일

제1독서
열왕기 상권 12,26-32; 13,33-34
그 무렵 26 예로보암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쩌면 나라가 다윗 집안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27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집에 희생 제물을 바치러 올라갔다가, 자기들의 주군인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마음이 돌아가면, 나를 죽이고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돌아갈 것이다.’ 28 그래서 임금은 궁리 끝에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그리고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일은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여러분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29 그러고 나서 금송아지 하나는 베텔에 놓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 30 그런데 이 일이 죄가 되었다. 백성은 금송아지 앞에서 예배하러 베텔과 단까지 갔다.
31 임금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의 자손들이 아닌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사제들을 임명하였다. 32 예로보암은 여덟째 달 열닷샛날을 유다에서 지내는 축제처럼 축제일로 정하고, 제단 위에서 제물을 바쳤다. 이렇게 그는 베텔에서 자기가 만든 송아지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자기가 만든 산당의 사제들을 베텔에 세웠다.
13,33 이런 일이 있은 뒤에도 예로보암은 그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지 않고, 또다시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산당의 사제들을 임명하였다. 그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직무를 맡겨 산당의 사제가 될 수 있게 하였다. 34 예로보암 집안은 이런 일로 죄를 지어, 마침내 멸망하여 땅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복음 마르코 8,1-10
1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2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3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4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5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7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8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9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10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지난 12월과 1월, 두 달 동안 저는 살이 엄청나게 불었습니다. 아마 신학생들과 함께 생활을 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편했나 봅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체중을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현재 열심히 다이어트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답니다. 매일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을 하고, 저녁 6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등 나름대로 살을 빼기 위해서 노력을 줄이지 않고 있지요. 그 결과 지금 현재 한 5Kg 정도를 감량할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기쁘던 지요.

사실 체중 빼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더군요.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니까 왜 이렇게 먹을 일이 많이 생기는지요? 또한 저녁만 되면 왜 이렇게 배가 고픈지요? 마음잡고 운동 좀 하려고 하면 날씨가 좋지 않거나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는지요? 그래도 힘들게 다이어트를 한만큼 체중이 줄어서 무척 흐뭇했습니다.

그런데 억울한 것은 체중이 느는 것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즉 순식간에 이루어진데 반해서 체중을 줄이는 것은 아주 천천히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체중 줄이는 것 역시 체중 느는 것처럼 저도 모르는 사이에 순식간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절대로 그렇게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의 죄도 이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죄란 것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죄를 뉘우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힘들어 하시는 것으로 고해성사를 꼽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이렇게 힘든 고해성사라 할지라도 주님의 사랑을 굳게 믿으면서 성사에 임한다면 커다란 기쁨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특히 주님께서는 누구 하나도 예외 없이 다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자신 있게 주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이 더 큰 기쁨과 함께 주님의 사랑을 더 많이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4천명의 군중을 배불리 먹이십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4천명의 군중이 모두 착한 사람들일까? 모두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해야 할 만큼 좋은 사람들일까? 4천 명 정도 되면, 별의 별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 앞으로 어떤 이유를 가졌든지 모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도 차별 하지 않고 똑같이 음식을 나누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들이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즉, 주님 앞에 무조건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얼마나 주님 앞에 나아가고 있나요? 혹시 갖은 이유를 들어서 당신 앞에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주님 앞에 나아가기만 해도 얻을 수 있는 은총과 사랑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님 앞에 철저히 나아가는 나의 모습을 기원하여 봅니다.


체중 조절을 합시다. 체중을 늘릴 분은 늘리시고, 줄이실 분은 줄이시길…….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때는('좋은 글'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 할때는
친구를 사랑하는 맘이 남아 있을 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울고 싶을 때는
친구가 내곁을 떠나갈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고 싶을 때는
친구가 점점 변해 갈 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두려울 때는
친구가 갑자기 차가워 질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할 때는
친구가 나의 존재를 잊으려 할 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웃고 싶을 때는
친구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마울 때는
친구가 나의 마음을 알아 줄 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할 때는
친구가 내 곁에 머물러 있을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다정스러울 때는
친구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믿고 싶은 것은
친구가 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친근하게 느낄 때는
친구의 손을 꼭 잡고 마주 앉아 있을 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외롭다고 느껴질 때는
친구가 내 곁에 없다고 생각 될 때입니다.

세상에 서 가장 바라고 싶은 것은
친구의 맘속에 내가 영원히 간직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은
바로 내가 사랑하는 나의 친구...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