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사랑과 겸손의 마음으로 만들도록 노력합시다.

ohjulia 2006. 2. 16. 07:22
2006년 2월 16일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제1독서
야고보서 2,1-9
1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2 가령 여러분의 모임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누추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온다고 합시다. 3 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 “선생님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 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 한다면, 4 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5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6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여러분을 억누르는 사람들이 바로 부자가 아닙니까?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 7 여러분이 받드는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 8 여러분이 참으로 성경에 따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지고한 법을 이행하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9 그러나 사람을 차별하면 죄를 짓는 것으로, 여러분은 율법에 따라 범법자로 선고를 받습니다.


복음 마르코 8,27-33
그때에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30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고갯마루에 주막집이 있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발의 노인이 주인이었습니다. 한 나그네가 오더니 물었습니다.

“저 아랫동네로 이사를 가는 중입니다만, 저 동네 사람들은 좋은 편인가요, 나쁜 편인가요?”

“지금까지 살던 동네는 어땠수?”

“형편없는 사람들이었지요.”

“그랬었군. 저 동네도 형편없는 동네일 거요.”

“쳇, 또 재수 없는 동네가 걸렸군.”

얼마 후 다른 나그네가 오더니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던 동네는 어땠수?”

“아주 좋은 곳이었는데, 피치 못할 일이 있어서 이사를 가는 길입니다.”

“그랬었군. 아주 좋은 동네이지요. 아주 마음에 들 테니, 빨리 가 보시우.”

“감사합니다. 어르신네와 한 잔 하고 떠나고 싶습니다. 아주머니, 여기 술 한 상 봐 주시오.” 하더랍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이태조와 무학대사의 대화에도 있지요. 이태조가 무학대사에게 “대사가 돼지로 보이는군요.” 하자, 무학대사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지요. “저는 임금께서 부처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돼지의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은 마음의 거울이라고도 하지요. 그래서 즐겁게 이 세상을 바라보면 즐거운 세상이 되고, 또한 형편없다고 생각하면서 이 세상을 바라보면 형편없는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마음을 간직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어떤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지를 테스트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시지요. 즉, 어떤 마음을 간직하느냐에 따라서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기도 하고, 또 반대로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정답을 이야기합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로 스승님을 따르겠다는 마음, 즉 사랑과 겸손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제대로 알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말에 베드로는 펄쩍 뜁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지요. 인간적으로 볼 때 스승님께 대한 충정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안에는 욕심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스승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지요. 놀라운 기적과 좋은 말씀으로 당시의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던 분이 아닙니까? 자신도 제자라는 이유로 덩달아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데, 스승님이 돌아가신다니……. 베드로의 펄쩍 뛰는 장면이 이해됩니다.

바로 이런 욕심의 마음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을 간직하고 있나요? 그래서 예수님께 과연 어떤 말을 들을까요?


사랑과 겸손의 마음으로 만들도록 노력합시다.



행복도 심는 것입니다('아름다운 사람은 향기가 있다' 중에서)

모든 행복은 행복한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생각은 눈에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부터 옵니다.
가시적 현실은 비가시적 생각이 자란 열매입니다.
어떤 생각을 심는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선택됩니다.

행복한 생각을 심으면
행복한 인격이 나오고,
행복한 인격을 심으면
행복한 인생이 나옵니다.

인생은 작은 선택들이 모여 큰 선택들이 됩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행복은 습관입니다.
불행도 습관입니다.
평소에 행복의 선택을 훈련함으로 나의 행복은 결정됩니다.

불행은 원치 않으면 불행한 생각을 거부해야 합니다.
불행한 생각을 선택해서 행복해 지는 법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