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rd/† 聖人들의 삶을 통해서

성 알렉시오 팔코니에리와 그의 동료들 (2월 17일) 성모의 종 수도회 창설자 7성인

ohjulia 2006. 2. 17. 06:31
고향으로 , 성 알렉시오 팔코니에리와 그의 동료들
 

    성 알렉시오 팔코니에리와 그의 동료들 (Seven Founders of the Order of Servites Servants of Mary)

    성인의 활동연도 : 1200-1310년 성인과 같은이름 : 알렉시스, 알렉시우스, 알렉씨오, 알렉씨우스 7성인은 모두 북 이탈리아에 있는 플로렌스의 대 상인(商人)들로 13세기 중엽의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성 본필리오 모날디오, 성 보나줌다 마네도, 성 마네도 안델라, 성 아미데오 데 아미데이, 우구치오의 성 우구치오, 성 소스데네오 데 소스데네이 그리고 알렉시오 팔코니에리, 이들의 축일은 창설자 7성인 중의 하나인 성 알렉시오 팔코니에리가 1310년에 세상을 떠난 날이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독일 황제 프리데리히 2세의 군대에게 침입 당해 국민은 겔프인과 기베린인의 두 파로 갈려 도시와 도시,사람과 사람이 서로 싸우게 되어 참으로 불안한 시대였다. 이때에 7성인이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세속을 떠나 오로지 하느님만을 섬기려 원하게 된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1233년 성모 승천 대축일에 성모 마리아께서 그들 각자에게 발현하셔서 집을 떠나 수덕의 길을 닦도록 권했으므로 그들도 이제는 굳은 결심을 하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같이 자기들의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주교의 하가를 얻어 9월 8일 성모 성탄 축일을 계기로 교외에 마련한 가마르자라는 초막에서 그립던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어느날 그들이 초라한 옷을 입고 읍을 걷고 있으니까 조그만 아이들이 졸졸 따라오면서 대단히 즐거워하듯이 "성모의 종, 성모의 종"하며 떠들었다. 그들의 수도회가 후에 주교에게 "성모의 종 수도회"라고 명명(命名)된 것은 이러한 아이들의 말을 따라 지은 것이다. 그 아이들 중에 어린 필립보 베니디오라는 아이도 있었는데, 그가 나중에 성모의 종 수도회에 들어와 총장의 중책을 맡아 회의 발전에 전력하고 성인이 되었다는데, 하느님의 섭리하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7성인의 탄복할 만한 생활양식은 곧 마을에 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지도를 받으려고 모여들었다. 성인들은 이를 귀찮게 여기고 주교의 허가를 얻어 다시 그곳에서 90리 가량 딸어진 몬테 세나리오라는 적막한 곳에 자리를 잡고 기도와 고행의 은수 생활을 했다. 어느 금요일의 일이다. 그들이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있으니까 성모 마리아가 재차 발현하셔서 아우구스티노회의 규칙을 사용하고, 검은 수도복을 입고 또한 성자의 십자가 밑에 서 계시는 성모의 고통을 존경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7성인들이 즉시 그 말씀을 순종한 것은 물론이다. 그들은 사방을 순회하면서 강론도 했다. 익서은 회의 창설시의 목적은 아니었지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묵묵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플로렌스 시 가운데에 아논자드라는 수도원을 건설했다. 각 지방을 순회하면서 강론을 하는데 사제가 아니고서는 다소 곤란한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 중의 6명은 주교의 승낙을 얻어 신품성사를 받았지만, 나머지 한 사람 알렉시오만은 겸손한 마음으로 절대로 사제의 권리를 받으려 하지 않고 끝까지 평수사로서 걸인생활을 계속하며 은혜 베푸는 자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빌면서 일생을 보냈다. 7성인 중 제일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은 보나줌다 마네도였다. 그는 1251년 8월 13일 미사에 봉헌 한 후 자신이 죽을 것을 형제들에게 알리고 제의를 입은 채 성서에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를 읽어 달라 부탁을 하고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하는 구절에 왔을 때 팔을 펴고 그 말씀과 같이 자신의 영혼을 하느님의 손에 맡겼다고 한다. 반대로 가장 오래 산 성인은 알렉시오 팔코니에리인데 그는 1310년 2월 17일, 110세의 고령으로 플로렌슨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들 7성인의 출생과 죽음은 동일하지 않았지만 모두 같은 무덤에 묻혔고, 다같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 마침내 모두 똑같이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대구대교구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