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야고보서
5,9-12 9 형제
여러분,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심판받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십니다. 10 형제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끈기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11 사실 우리는 끝까지 견디어 낸 이들을 행복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욥의 인내에
관하여 들었고, 주님께서 마련하신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과연 주님은 동정심이 크시고 너그러우신 분이십니다. 12 나의 형제 여러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하늘을 두고도, 땅을 두고도, 그 밖의 무엇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십시오. 그래야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 마르코 10,1-12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유다 지방과 요르단 건너편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다시 그들을 가르치셨다. 2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4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6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9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0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12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우선 공지사항 한가지부터 말씀드립니다. 제가 오늘(24일)부터 주일(26일)까지 교육을 다녀옵니다. 따라서
내일(25일)과 내일모레(26일)에는 새벽 묵상 글이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물론 새벽 방송도 없겠지요? 성지를 비워놓고 다녀오는 교육이라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이번에 받아야 할 교육인 것 같아서 걱정을 내려놓고 떠납니다. 아무튼 제가 없더라도 너무 아쉬워하지는 마시구여(전혀
아쉬워하는 것 같지 않지만...), 제가 없는 동안에도 새벽 카페 잘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화요일, 저는 교구청 신협 총회에
참석해서 좋은 선물을 하나 받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만보기’입니다. 많이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해서 만들어진 기계가 아닌가 싶은데요.
아무튼 신기하게도 허리에 이 기계를 차고 걸으면 얼마나 걸었는지를 알 수가 있답니다. 그래서 이 기계를 이틀 동안 차고 다니면서 하루에 얼마나
걷는지를 보았지요. 제가 얼마나 걸을 것 같아요?
우선 첫날(수요일)에는 하루 종일 바깥에서 일을 했거든요. 그랬더니만 만보기에
표시된 숫자가 12380입니다. 어제(목요일)는 강의 준비로 인해서 오후에는 방에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표시된 숫자가 9544입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이렇게 많이 걸을지는 몰랐거든요(혹시 기계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걷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어쩌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은 어쩌면 더 많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내가 행하고 있는
걸음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요? 그런데도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나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혼인의 불가해소성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지금 이 사회는 어때요? 점점 늘어나는 이혼율을 보면서,
왜 이럴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정말 왜 그럴까요?
바로 상대방에 대한 섣부른 판단 때문입니다. 나도 모르는
행동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모습을 보면서 섣부르게 판단하고 부정적인 모습만 보려고 하니 함께 살 수가 없는 것이지요.
어제 읽은 책에서 30초 규칙이란 것이 나옵니다. 이 30초 규칙이란, 어떤 일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섰을 때 딱 30초만 더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유부단하게 망설이라는 뜻은 아니지요. 대신 어떤 결단의 기로에 섰을 때 30초만 더 자신에게 겸허하게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짧은 30초의 순간이 인생을 결정적으로 뒤바꿀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아주 순간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으로 얻게 된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30초만 더 주의 깊게 바라본다면
어떨까요? 분명히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모든 만남에서 이런 30초 규칙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섣부른 판단에서 분명히 벗어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30초 규칙을 따라봅시다.
남을 칭찬할 수 있는
넉넉함(‘좋은 글’ 중에서) 우리는 남의 단점을 찾으려는 교정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남의 단점을 찾으려는 사람은 누구를 대하든 나쁘게
보려 합니다.
그래서 자신도 그런 나쁜 면을 갖게 됩니다. 남의 나쁜 면을 말하는 사람은 언젠가 자신도 그 말을 듣게
됩니다.
우리는 남의 좋은 면, 아름다운 면을 보려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진가를 찾으려 애써야 합니다. 그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감동하며 눈물을 흘리고 싶을 만큼의 맑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남의 좋은 점만을 찾다 보면 자신도 언젠가 그 사람을 닮아 갑니다.
남의 좋은 점을 말하면 언젠가 자신도 좋은 말을 듣게 됩니다.
참 맑고 좋은 생각을 가지고 나머지 날들을 수 놓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코끝이 찡해지는 감격을 가질 수 있는 티 없이 맑은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그의
장점을 보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많이 칭찬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말을 할 때마다 좋은 말을
하고, 그말에 진실만 담는 예쁜 마음 그릇이 내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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