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유스티노 (St. Justin) 교부 , 순교자
성인의 활동지역 :
성인의 활동연도 : +165년
성인과 같은이름 : 유스띠노, 유스띠누스, 유스티누스, 저스틴
성 유스티누스(Justinus, 또는 유스티노)는 100-110년 사이에 팔레스티나의
사마리아 지방에 세워진 플라비아 네아폴리스의 이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성장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자세로 꾸준히 탐구하는 학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스토아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피타고라스 철학 그리고 플라톤
철학에 연이어 몰두하였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에사레아의 바닷가를 산책하던 중에 한 노인을 만나 인간의
모든 사상, 플라톤 사상에도 한계와 부족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다.
그가 그리스도교에 심취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태도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유스티누스가 에페수스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것은 130년
경이다. 그는 이후 구도자로서가 아니라 진리의 설파자, 신앙의 설교가로
길을 바꾸어 한평생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그는 평신도였으나 스승이며 복음의 사도가 된 것이다.
그는 132-135년 사이에 에페수스에서 유대인 트리폰과 종교에 관한 토론을 가졌으며,
이것을 토대로 155년에 “트리폰과의 대화"를 저술하였다.
그는 순회교사로서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가르치다가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가
있는 로마에 도착해서 그곳에 머물며 자기 집에서 교리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웠다.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항의하는 2편의“호교론"을 썼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호교론자이며 또 그리스도교에 대한 장문의 글을 남긴
최초의 평신도이다.
그는 크레센스라는 견유학파 사람과 논쟁을 벌이다가 그의 사주로 인하여 로마의
집정관인 유니우스 루스티쿠스에게 고발되어 다른 6명의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이방 신전에 희생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수많은 고문을 당한 후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가톨릭성인사전에서]
유스티노는 ’의로운’이란 뜻이다.
유스티노는 다년간 여러 가지 이방인의 철학을 연구하고 난 뒤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으나 종교적 진리에 대한 의문은 계속 남아 있었다.
젊었을 때 그는 플라톤 학파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교가 철학보다 생명과 존재라는 크나큰 문제에 더 나은 해답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계속해서 철학을 연구하였으며 첫 그리스도인 철학자가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희랍 철학의 가장 훌륭한 요소와 결합시켰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철학이란 그리스도의 인도자이며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교육자라는 것이다.
유스티노는 이방인들의 오해와 공격에 대해 그리스도교를 저술로 옹호한 옹호론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호교론 가운데 두 가지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 그것들은 로마 황제와
원로원에 제출한 것이다.
유스티노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확고한 자세 때문에 165년에 로마에서 참수되었다.
유스티노는 철학자들의 수호자로서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자연적 능력을 이용하도록
영감을 준다.
특히 그리스도에게 봉사하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인 생활을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가
알고 이해하는 능력을 활용하게 한다.
사람들은 곧잘 오류를 범하는데다가 더 나아가 특히 생명과 존재에 관한 심오한
문제에서는 잘못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자연적인 생각을 종교적인
진리에 비추어 교정하고 확인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교회의 박학한 성인들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그리고 믿기 위해서 이해한다."
"철학은 존재하는 것에 대한 지식이고 진리의 명확한 이해이다.
그리고 행복은 이러한 지식과 이해에 대한 보상이다."(유스티노, ’트리폰과의 대화’ 3장)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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