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16일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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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에제키엘 9,1-7;
10,18-22 1 주님께서는 내가 듣는 앞에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이 도성의 징벌이 다가왔다. 저마다 파멸의 무기를 손에 들고 나와라.” 2 그러자 북쪽으로 난 윗대문 쪽에서 여섯 사람이
오는데, 저마다 파괴의 무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아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는 서기관 필갑을 차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와서 구리 제단 곁에 섰다. 3 그러자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그때까지 자리 잡고 있던 커룹들 위에서 떠올라 주님의 집 문지방으로 옮겨
갔다. 주님께서는 아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 필갑을 찬 사람을 부르셨다. 4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도성 가운데로,
예루살렘 가운데로 돌아다니면서, 그 안에서 저질러지는 그 모든 역겨운 짓 때문에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 놓아라.” 5
그분께서는 또 내가 듣는 앞에서 다른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 사람의 뒤를 따라 도성을 돌아다니며 쳐 죽여라. 동정하지도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마라. 6 늙은이도 젊은이도, 처녀도 어린아이도 아낙네도 다 죽여 없애라. 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 내
성전에서부터 시작하여라.” 그러자 그들은 주님의 집 앞에 있는 원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하였다. 7 그분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집을 부정하게 만들어라. 그 뜰들을 살해된 자들로 채워라. 가거라.” 그러자 그들은 도성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쳐 죽였다. 10,18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 문지방에서 나와 커룹들 위에 멈추었다. 19 그러자 커룹들은 날개를 펴고, 내가 보는 앞에서 땅에서 치솟았다.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들도 옆에서 함께 나갔다. 그들이 주님의 집 동쪽 대문 어귀에 멈추는데,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그들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20 나는 크바르 강 가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떠받들고 있는 생물들을 보았다. 나는 그들이 커룹임을 알 수 있었다. 21 그들은
저마다 얼굴이 넷이고 날개도 넷인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같은 형상이 있었다. 22 또 그들의 얼굴 형상은 내가 크바르 강 가에서 보았던
모습, 바로 그 얼굴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복음 마태오 18,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눈빛이 아름다운 배우로 프랑스의 이자벨 아자니가 선정된 적이
있습니다(저는 솔직히 이 사람이 누군지 모릅니다. 찾아보세요.). 그런데 이 배우의 눈빛이 신비롭고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가 너무나 어이가
없네요. 글쎄 시력이 극도로 나쁘기 때문에 눈빛이 그렇게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즉, 흐리게 보이는 세상을 흐린 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눈빛이
신비롭게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이랍니다.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네요. 사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 안경을 벗고서 물건을
볼 때면 어떤가요? 눈을 찡그리면서 억지로 보려고 하기 때문에 얼굴이 주름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흐린 모습일지라도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면, 초점이 맞지 않아서 오히려 신비한 눈빛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네요.
인상주의 화가로 유명한 모네는 말년에
점차 시력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그 흐린 시력으로 본 정원을 그대로 받아들여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그렸지요.
그래서 그때 그린 ‘수련’이란 작품은 모네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흐리게 보이는 세상도 있는 그대로
볼 때, 스스로 신비롭고 아름답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렇게 흐리게 보이는 세상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분명하게 보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이 점은 친구를 사귀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친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게 도움이 되는 그 친구의 어떤 면만을 바라보면서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내게
도움이 되는 면만을 찾으려고 하니 얼마나 힘들까요?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을 억지로 볼 때 눈을 찡그려야 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이렇게
찡그려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점점 추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우리들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모든
면을 있는 그대로 봐주라고 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용서인 것이지요. 물론 이 용서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용서하지 않는다고 해서 변화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이 나의 용서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불행해질까요?
아니면 세상이 ‘네가 그 사람을 미워하니까 혼내줄게..’. 라고 말할까요? 아닙니다. 변화되는 것은 딱 한 가지뿐입니다. 바로 내 마음의 눈이
찡그려지면서 점점 보기 싫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길 원하시는 주님의 뜻에 과연 우리들은 얼마나 적합하게 살고
있을까요? 나의 모습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여 봅니다.
화내면 얼굴에 주름이 생긴다고
하지요? 얼굴에 주름이 생기지 않게 합시다.
작은 것도
사랑입니다(정중화) 사랑하는 이에게 해줄 수 있는 어떤 것도 사랑입니다 작은 것에서
감동을 주고 조금 더 커진 사랑의 부피에 행복해합니다.
햇살이 눈부신 이른 아침 하얀 운동복 차림으로 산책로를 정겹게
걷는 부부를 바라본 적 있습니까 석양이 아름다운 등산로에서 곱게 세월을 보낸 노부부의 여유로운 여정, 그 어루만짐을 본 적이
있습니까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작고 적어도 정성이 담긴 진정 마음으로 서로를 향하는
것 사랑은 마음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옅은 구름 지나간 무채색 하늘 이슬 머금은 환한 미소를 지닌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작은 고백을 큰 사랑을 얻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해줄 수 있는 작은 것도 큰 사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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