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헤드비지스 (St. Hedwig) 과부 , 수녀
성인의 활동지역 :
성인의 활동연도 : 1174-1243년
성인과 같은이름 : 야드비가, 헤드비가, 헤드비그, 헤드비제
성녀 헤드비지스(Hedwigis)는 독일 바이에른(Bayern) 안덱스의 백작 베르톨드 3세의
딸이다.
그녀는 프랑코니아(Franconia)의 키트징엔(Kitzingen)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12세 때에 18살의 폴란드 왕자이자 후에 실레지아(Silesia)의 공작이 된 하인리히
(Heinrich)와 결혼하였다.
남편은 매우 열심하고 또 용기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아내의 신앙생활과 자선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그는 아내의 요청에 따라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law) 근방 트렙니츠(Trebnitz)에
시토 수녀원을 세웠다.
이 수녀원은 실레지아 지방의 첫 번째 여자 수도원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6명의 자녀가 있었다.
1238년에 남편과 사별한 헤드비지스는 자신이 세운 수녀원에서 수도생활에만
전념하여 큰 덕을 쌓았다.
그녀는 주위 사람들의 물질적, 영성적 이익을 위하여 늘 헌신하였으나, 자기 자신은
극도의 가난 속에서 하느님만을 섬겼다고 한다.
야드비가(Jadwiga)로도 불리는 성녀 헤드비지스는 실레지아 지방의 수호성녀이며,
1267년에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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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누리는 권력과 부를 현명하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대단히 드물다.
그런데 이 적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헤드비제스이다.
12세기가 끝나 갈 무렵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헤드비제스는 어린 나이에 슐레지엔의
공작 헨리와 결혼했다.
그녀의 설득과 개인적인 노력으로 술레지엔에는 많은 남녀 수도원이 설립되었다.
몇 개의 병원들도 세워졌는데 그 중 하나는 나환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녀는 권력 투쟁이 난무하던 그 당시에 주위 나라들과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녀의 가장 큰 슬픔은 자기의 두 아들이 나누어 받은 영지에 불만을 품고
서로 무력 투쟁을 벌이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남편인 헨리가 두 아들에게 나누어 준 영지에 한 아들이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서로가 절제할 것을 서원한 다음 대부분의 시간을
트레브니즈의 수도원에서 보냈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수녀원의 정식회원은
아니었지만, 공동 생활에 참여했다.
1243년에 세상을 떠난 그녀는 트레브니즈에 묻혔다.
1267년에 시성되었다.
우리가 어떠한 재물을 소유하도록 축복을 받는다 해도 그것은 우리 자신의
필요나 개인적인 안락만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어떠한 용도에 그 재물이 쓰이든지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발전을
가져와야 하며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
지상의 사물 자체는 결코 하느님의 사랑에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을 분명히 드러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재물에 집착하여 그 축복의 원천인 하느님을 잊어 버릴
만큼 감각적인 것에 유혹을 받게 되는 것이다.
헤드비제스는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상의 재물을 사용하기
위하여 나중에 수녀가 되고자 했던 자신의 소망까지 희생했다.
그녀는 자신의 재물로 충분히 안락하게 살수 있었으나 스스로 가난을 택하여
겨울 신발과 같은 아주 기본적인 필수품까지도 사양했다.
그녀는 수도복을 입고 수녀처럼 생활을 했지만 자기 재산의 관리는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살았고, 재물을 아낌없이 사용함으로써 그녀 자신과 그녀가
도와 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하느님 은총에 의한 초자연적 생활을 더욱 잘 깨닫게
해주었다.
일곱자녀의 어머니이며 슬레시아의 공작부인인 헤드비히는 과부로서의 생활속에서
그리고 하루하루를 경건히 지내는 생활습관 속에서 신성을 경험하였습니다.
결국 그녀는 그녀가 트레비츠(폴란드)지방에 세운, 시토 수도회에 입회하였으며,
그녀의 모범적인 삶은 우리에게 생활의 어떠한 환경들도 우리를 보다 위대한
신성으로 인도하는 훌륭한 길잡이이며 하느님의 섭리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이렇듯 크리스찬적 사랑으로 일곱 자녀들을 훌륭하게 교육하신 성스러운 어머니의
예는우리에게 우리 공동체가 간과하기 쉬운 가족단위의 신앙교육의 중요성과
그 문제점을 지적해 줍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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