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오늘의 강론

단식의 궁극 목적은

ohjulia 2007. 2. 23. 07:25
고향으로(그리스도의 향기)

 

    2월 23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마태오복음 9,14-15 오늘의 강론을 들으세요 “단식의 궁극 목적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친교이다.” 2006년 9월 (공지영 소설) 송해성 감독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불우한 성장기를 보내며 밑바닥 인생을 살다가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만을 기다리는 비운의 청년 사형수와 부유하고 화려하게 보이지만, 마음 속 깊은 상처로 인해 세 번의 자살을 시도하며 세상과 사람에 대해 냉소적이 되어버린 ‘골칫덩이’ 대학 강사와의 만남을 통해, 인간 존재의 소중함을 깨달아 가는 참 감동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제가 알고 있는 (2000년 8월 부산교도소 성령세미나 안수식을 겸한 강의에서 알게 된), 또 다른 아픔을 겪고 있는 한 수인이 생각나서 그 친구의 빠른 석방을 바라며 ‘편지 한 통’을 먼저 소개할까 합니다. 신부님 보십시오! 지면으로 첫 인사를 올림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신부님께 글을 올리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오라 성령세미나 안수기도를 위해 오셔서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그 중에서 신부님의 어린 시절 어려웠던 가정 환경을 말씀해 주신 것이 저의 마음에 너무 와 닿고 이해할 수 있어 신부님께라면 저의 고통받는 죄인의 심정들을 다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용기 내어 조심스레 펜을 들어 봅니다. 저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세요. 저는 지금 부산교도소에 수감 된 죄인 ○○○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아주 큰 죄 존속살인이라는 폐륜적 범죄를 저질러 15년형을 선고받고 수용되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 할 수 없었던 고통과 실연들을 가슴에 묻어둔 체 지금은 하느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위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을 느끼고 누구에게 저의 속사정 하나 털어놓을 수 없어 혼자가 되어 버린 저 자신을 원망도 많이 했었습니다. 파탄이 나버린 가정에서 무엇을 바라며 또 무엇에 기대어 살아야 할까 하며 생각하니 너무나 눈앞이 캄캄했었습니다. 요즘은 하느님께 의지하며 저의 잘못을 반성하며 용서해 주시길 바라며 기도를 생활화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가정 폭력으로 하루가 멀다 않고 술 취하신 아버지의 그때의 화나신 얼굴이 아직도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병으로 고생하시고 계신 어머니와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 아버지의 심한 구타로 인해 정상적이지 못한 모습으로 태어난 동생이 저에게 있습니다. 제 나이 그때 21살이었을 때 아버지의 심한 폭력과 외도를 참지 못하고 어머니께서는 가출을 하셨고 남겨진 동생들은 성하지 못한 몸으로 밥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추운 날씨에 밖으로 내몰려야 했었습니다. 생계유지로 군대 입대도 연기한 체 일자리를 알아보고 들어오면 집안은 언제나 초상집이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내연의 여자를 집으로 들이시기도 하고 동생들에게 인사도 시켜 정말 날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아버지가 맞는가 의심도 들기도 했었습니다. 어머니를 가출하게 만든 아버지와 내연의 여자는 동거를 하셨고 저의 가정은 처참히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매번 술 취하신 아버지의 매질은 계속 이어졌었고 그런 환경 속에 태어난 저 자신이 너무 싫었습니다. 아버지의 그런 행동들은 어린 시절부터 보며 자라서 저도 술만 취했다면 그동안 받은 울분을 다스리지 못해 자해도 하고 싸움도 많이 했었고 어머니가 가출하기 전에 한 번은 울고 불며 모두 죽자며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린 적도 있었는데 자식의 고통을 아시는지 울며 매달리시는 어머니 때문에 무마 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질게 살면서의 소원은 가식 없는 웃음이 있는 TV 드라마 속의 가족이 되어보는 것이 저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의 소원은 그냥 무시 된 채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것이 되어 지금 제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하느님께서도 저의 죄는 용서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폐륜아로 낙인찍힌 저는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요? 저의 잘못으로 아직도 고통받는 저의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에게 너무나 미안해 접견을 할 때에는 고개 들기가 힘들어 집니다. 가출하신 어머니는 돌아오셔서 다행이지만 동생들을 데리고 험한 길을 걸어가셔야 되는 힘든 모습을 저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체 지켜봐야 되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파 옵니다....... 신부님 ! 저의 답답한 마음 조금이라도 이해를 해 주실 것이라 믿고 무작정 편지를 올리오니 많은 이해 바라오며 바쁘신 와중 저의 편지를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자매님, 수녀님, 동료들에게도 상의하지 못하고 고통받는 저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저 대신 돌아가신 저의 아버지를 위해 기도 한 번 해주십시오. 제가 기도는 계속하고 있지만 폐륜아의 기도는 들어주시질 않을 것 같습니다. 신부님 ! 종이 몇 장에 제 마음을 다 담을 수 없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아쉬운 마음은 여기서 접어두고 두서 없는 못난 글 여기서 줄일까 합니다. 겨울 날씨 감기 조심 하시구요 건강 유의하십시오. 그럼 다음 서신까지 안녕히 계십시요. 2000년 12월9일 예비자 ○○○올림. 인도 켈커타의 마더 데레사 수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고통이 있습니다. 굶주림에서 오는 고통, 짐 없음에서 오는 고통, 온갖 질병에서 오는 물질적인 고통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외로운 것, 사랑 받지 못하는 것, 바로 곁에 아무도 없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고통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라고요 애청자 여러분, 조금 전 읽어드린 편지 내용의 친구는 지금 하느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 예수님 사랑 받는 제자, 친구가 되어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단식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구약에서는 ‘종말론적 구원’을 ‘혼인 잔치’라는 상징(비유)으로 서술했는데 (이사야 61.10, 62.5) 예수님께서는 당신으로 인해 구약이 실현되어 종말론적인 구원이 이룩되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함께 하는 기쁨의 시기에는 단식이 적합하지 않다고 대답하십니다. 이사야 58. 6-8에서는 ‘하느님(야훼)께서 기뻐하시는 단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내가 기뻐하는 단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억울하게 묶인 이들을 끌러 주고 멍에를 풀어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 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 애청자 여러분, 한편에서는 물질적인 풍요 속에 낭비를 일삼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아와 빈곤 속에 허덕이고 있는 현대 사회 속에서, 자신의 배고픔을 통한 이웃 사랑과 나눔의 실천으로 우리도 작은 예수, 또 다른 예수가 되어 봅시다. ▶ 서정웅 신부

    주님을 의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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