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간 목요일>(2010. 2. 25. 목)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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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를 짝사랑했는데,
그 여자는 그를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아서 그는 많이 불행했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요정이 그에게 나타나서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남자는 그 여자와 결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요정의 도움으로 그 남자는 그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더 불행해지고 더 고통스러워졌습니다.
그 여자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기 때문입니다.
그 남자가 요정에게 따졌습니다.
요정이 대답하기를,
“너는 결혼하게 해달라고 했지 서로 사랑하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결혼을 앞둔 연인들에게 요정이 나타나서 소원을 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두 사람이 지금처럼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다가,
죽을 때에도 행복한 상태 그대로 둘이 함께 죽었으면 좋겠다.“ 라고 했습니다.
요정은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식을 마친 후 신혼여행을 가다가 교통사고로 함께 죽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요정에게 자기 소원을 말했습니다.
그의 소원은 투명 인간이 되어서 남들이 못하는 일을 실컷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정은 그의 소원대로 그를 투명 인간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투명 인간이 된 그는 너무 기뻐서 집 밖으로 달려 나가다가
달려오는 트럭에 치여서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트럭 운전사는 자기 차에 뭔가 부딪쳤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그냥 가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요정이 나타나서 소원을 물었습니다.
그는 요정이 소원을 들어주는 방식을 이미 알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소원을 말했다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그렇게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후회하지 않도록
아주 지혜롭게 자기 소원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계산하고, 또 계산하고,
예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고, 따지고, 궁리하고,
가장 정확하면서도 가장 포괄적이고,
모든 사람에게 다 이로운 일이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은 다 얻어낼 수 있도록
자기 소원을 포현할 수 있는 그런 한 마디의 말을 찾아내려고 애를 쓰고 또 쓰다가....
.......결국 포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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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만 새겨듣고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을 무시하면 곤란합니다.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하느님께서는 빵을 주려고 하시는데 돌을 청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약을 주려고 하시는데 사약을 청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청하려면 제대로 청해야 합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예수님 말씀 속에 답이 있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첫 번째 이야기에서,
그 남자는 자기의 행복만 생각하고 상대방 여자의 행복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결과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
그런 불순한 의도로 소원을 빌면 불행하게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와 네 번째 이야기는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일차적으로 하느님과의 관계에 적용됩니다.
“하느님께서 해 주시기를 바라는 그대로 하느님께 해 드려라.” 라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소원을 말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물어야 합니다.
인간의 소망과 하느님의 희망이 일치한다면 그 사람의 기도는 백발백중입니다.
그러나 일치하지 않는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그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 소망을 하느님의 희망과 일치시키는 것, 그것을 가장 먼저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은 분명히 모든 사람의 구원과 모든 사람의 행복일 것입니다.
그러니 혼자서만 잘 먹고 잘살기를 바라는 기도와
나중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맹목적인 기도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만일에 그런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기도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악마가 도와준 것입니다.
물론 어떤 소원이 있을 때 그 소원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로서는 일단 기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결과에 대해서는 하느님께 맡겨 드려야 합니다. 정반대의 결과가 되더라도.
가장 모범적인 기도는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입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마태 26,39)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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