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오늘의 강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ohjulia 2010. 5. 5. 07:35




    <부활 제5주간 수요일>(2010. 5. 5. 수)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말씀만 주목하면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신앙생활에서 멈추고 맙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으면 그 열매는 가지의 것입니까? 나무의 것입니까?

    열매도 가지도 줄기도 뿌리도 결국 하나의 나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 없이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사람 없이 창조를 완성하지 않으신다는 교회 격언이 있습니다.

    사람의 협력이 없어도 하느님께서 다 하실 수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협력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아담을 창조하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담에게 에덴동산의 관리를 맡기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에덴동산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람이 없는 에덴동산은 의미가 없습니다. 창조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의 완성을 위해서는 사람이 다시 에덴동산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혼자 일하시지 않고 사도단을 구성하셨을까요?

    물론 혼자 일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협력을 원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무조건 베풀기만 하고 인간은 무조건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함께 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와 열매가 모두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냥 소극적으로,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을 우리가 협력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다 쳐 내신다는 말씀,

    “붙어 있지 않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는 말씀,

    모두 다 살벌한 경고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카 5,31-31).”

    또 메시아에 관한 이런 말씀도 기억합니다.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이사 42,3).”

     

    예수님은 시들고 병든 가지를 무조건 잘라내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잘라내지 않으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부러진 가지도 다시 붙여서 살려내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잘 붙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 잘 듣고 말썽 안 부린다고 해서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예수님은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루카 6,44).” 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포도나무라면 포도를, 무화과나무라면 무화과를 맺으라는 말씀입니다.

     

    천주교 신자나 성직자나 수도자들 중에서도

    읽으라는 성경은 안 읽고 다른 종교의 경전이나 뒤적거리고,

    다른 철학이나 다른 사상에 관한 책들을 뒤적거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음도 없이 지식만으로 잘난 체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 잘 듣고 할 일은 다 하고 있지만 시선은 다른 데로 가 있습니다.

    몸은 교회 안에 머물러 있는데 생각과 마음은 속세에 가 있는 경우도......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무의 생명력이 가지에 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지가 살아야 나무도 살고, 나무가 살아야 가지도 삽니다.

     

    그런 관점에서 제도 교회를 생각해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우리가 지체인 하나의 몸입니다.

    몸이 건강하려면 모든 순환이 잘 되어야 합니다.

    흐름이 막히면 몸이 죽습니다.

    지시와 복종만 있고 그 반대 방향의 소통이 없으면 그것은 흐름이 아닙니다.

    상하 좌우의 흐름이 살아 있어야 건강한 몸이 되는 것처럼

    살아 있는 공동체가 되려면

    위에서 내려오는 흐름과 아래에서 올라가는 흐름이 모두 살아 있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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