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오늘의 강론

[스크랩]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ohjulia 2012. 7. 11. 11:22

<연중 제14주간 수요일>(2012. 7. 11. 수)(마태 10,1-7)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길 잃은 양에게 먼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시고,

그들에게 권한과 능력을 주시면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파견하십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마태 10,5-7)."

 

이 말씀은 다른 민족들(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과 사마리아인들에게는

복음을 선포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우선 먼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스라엘이 가장 먼저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고,

가장 먼저 하느님을 믿고 섬겼기 때문에

우선 먼저 이스라엘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왜 한민족이 아니고 이스라엘 민족이냐?

라고 불평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대해 민족적 자존심 같은 것을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건 그냥 하느님의 의지와 계획입니다.

또 어떤 민족이든지 구원사업의 출발점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처음으로 하느님의 계시가 인간에게 내릴 때

아브라함이 가장 적임자였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는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지시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마태 28,19)"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루카복음에서는 표현이 약간 다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루카 24,47)."

 

오늘날의 우리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가장 먼저 받은 일이나

복음을 가장 먼저 받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이스라엘은(또는 예루살렘은)

사도들의 복음 선포 활동의

교두보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선교활동의 교두보' 라는 말은 중요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예루살렘에서부터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더 먼 곳으로 가게 되었을 때

예루살렘 교회는 일종의 본부 역할도 하고,

후방의 보급 기지 역할도 했습니다.

 

만일에 그런 거점이나 본부 없이

사도들이 그냥 뿔뿔이 흩어져서 개별적으로 선교활동을 했다면?

 

그 결과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별다른 성과 없이 공중분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유대인들보다는 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그래도 어떤 도시에 들어가게 되면 항상 먼저 유대교 회당부터 찾아갔습니다.

막무가내로, 아무 대책도 없이, 어떤 전략도 없이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복음을 선포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외적으로 아테네 같은 곳에서는

길거리에서 바로 복음을 선포하기도 했지만,

별로 큰 성과는 얻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든 우리는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라는 예수님 말씀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을 갈망하는 사람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부터 하느님을 믿지 않았던 이방인들은 '메시아' 라는 말 자체를 몰랐고,

당연히 메시아를 기다리지도 않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고,

기쁜 소식을 듣게 되기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먼저 복음이 선포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는 사람들에게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복음을 전한다면

'저 떠버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사도 17,18)'

라고 비웃기만 할 것입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먼저 물을 주는 법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나는 지금 무엇에 목말라 하고 있는가?' 를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길 잃은 양'이라는 말은 '목자 없는 양'이라는 뜻이고,

다시 이 말은 '목자를 애타게 찾고 있지만

목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양'이라는 뜻입니다.

 

"목자가 나를 애타게 찾듯이 나도 지금 목자를 애타게 찾고 있는가?"

 

하늘나라는 목자가 일방적으로 양을 붙잡아서 끌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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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Rev.S.Moy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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