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주간 월요일>(2012. 7. 16. 월)(마태 10,34-11,1)
<평화, 칼>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
이 구절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 이 구절의 '칼'을 '분열과 전쟁'으로 해석한다면,
이 구절은 '예수님 때문에' 세상에 분열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신 분인데,
예수님을 거부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평화도 거부합니다.
평화를 거부하는 것은 곧 칼을(분열과 전쟁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또 인류는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과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하는 사람으로 분열될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시는 분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전쟁과 분열의 원인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흩어져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로 모아서
참 평화와 행복을 주려고 하시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자꾸만 더 흩어져 갑니다.
2) 이 구절의 '평화'를 '몸만 편안한 상태'로,
'칼'을 '참 평화를 얻기 위한 강한 의지와 노력'으로 해석한다면,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를 얻으려면
몸만 편안한 상태를 바라는 욕망을 끊어버리고
참 평화를 얻기 위해 강한 의지로 노력을 해야 한다.' 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두 가지 해석은 하나로 합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고, 고달프고 힘든 상황을 겪게 될 때,
박해에 굴복하면 몸은 편하겠지만 참 평화는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참 평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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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때문에 가족의 박해를 받는 일도 생길 것입니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마태 10,36)." 라는 말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식구가
신앙생활을 박해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가정의 평화가 깨지고 칼이(분열과 다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
라는 계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신앙을 위해서라면 가족이라도 칼로 무 자르듯 관계를 끊어버려야 한다.'
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가족이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고,
'말이 아니라 삶으로'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서
가족을 감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가족의 박해에 굴복해서 신앙을 버리면 우선 당장에는 몸은 편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인 자신도, 그리고 그 가족도
참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7)." 라는 말씀은
가족만 사랑하고 예수님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더 사랑하는'이라고 비교하는 표현이 사용되었지만,
뜻을 생각하면
'이쪽은 사랑하지 않고 저쪽만 사랑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는'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은 사랑하지 않고 가족만 사랑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가족의 박해에 굴복해서
신앙을 버리는(배교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씀이 됩니다.
그렇게 신앙을 버린 사람은
끝까지 신앙을 지킨 사람들이 얻게 되는 평화, 행복,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족'은
넓은 뜻으로 생각하면 모든 세속적인 인연들,
또 모든 세속적인 욕망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박해가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올 수도 있습니다.
본능, 충동, 유혹, 내적 갈등 ... 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
외부가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박해가 올 때,
그럴 때에 더욱 단호하고 강한 의지와 결단이 필요하게 됩니다.
사실 가장 힘든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0,38-39)."
이제 그만 쉬고 싶을 때, 포기하고 싶을 때,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 의심이 생길 때,
혼자라는 생각에 외로울 때, 희망을 잃어버리고 절망하게 될 때...
그때가 바로 자기 자신의 참 평화를 위해서 칼이 필요할 때입니다.
처음에 가졌던 그 믿음으로 끝까지 가겠다는 각오와 다짐, 바로 그것.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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