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힘 단상 9월 5일
포숙(鮑叔)이 죽자 관중(管仲)이 옷을 걷어 올리고 슬피 울었다.
그 눈물이 마치 비 오듯 했다. 이에 그의 시종이 물었다.
“임금도 아버지도 아들도 아닌데 그렇게 우시니, 이 역시 무슨 연유가 있어서입니까?”
그러자 관중이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알지 못한다. 내 일찍이 포숙과 함께 남양에서 봇짐장사를 할 때,
내가 세 번이나 그 시장에서 모욕을 당하였지만 포숙은 나를 나약한 놈이라 여기지 않았다.
이는 내게 떳떳하고자 하는 명분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일찍이 포숙과 나는 세 번이나 임금에게 유세를 하였지만 세 번 모두 용납되지 못하였다.
이때에도 포숙은 나를 불초한 녀석이라고 욕하기는커녕
오히려 명석한 군주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위로하였다.
그런가 하면 포숙은 일찍이 나와 재산을 나눌 때에 내가 그보다 세 배나 더 많이 집었건만,
그는 나를 탐욕 하다고 보지 않고 오히려 내게 재물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였었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 주는 이는 바로 포숙이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 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그를 위해 슬피 우는 일이야 못하겠느냐?" 231
設苑 / 劉向撰輯 林東錫 譯註 東文選 1996
*
누구나 포숙과 같은 친구를 갖기 원한다.
내가 바로 포숙과 같은 친구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포숙과 같은 친구를 가지고 있는 관중을 부러워할 뿐이다.
포숙과 같은 친구를 갖기 보다는
왜 스스로 포숙이 되지는 못하는 것일까!
남이 나를 각별히 알아주기만을 바라며
내가 서둘러 남을 알아주려는 일에는 게으르다.
남을 알아주는 데는 완벽한 사람만이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의 단 한 가지만이라도 인정하고 알아줄 수 있다.
단 한 가지만으로도 인정해줄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대단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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