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잡지 11월호 원고
재미없으십니까? - ‘피로사회’ 속의 오늘의 신앙 (3)
송용민 신부
피곤한 세상과 재미없는 세상
할 일이 너무 많아 여가 시간이 없다고 투덜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일을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놀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 할 일이 있어도 자기 일이 재미없다고 짜증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일하다가 쉴 수 있는 여가 시간이 생겨도 놀 줄 몰라서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 일없이 살 수는 없는데 일을 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즐거움과 재미를 느끼는 기준이 서로 다르다보니 인생의 행복지수도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세상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잘 느끼지 못하고, 남이 즐겁게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사는 게 재미없고 피곤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세상이다.
우리 사회가 주5일제와 주 40시간 근무제가 정착 되어가서 제법 여가 시간이 늘었다고는 말하지만, 여전히 OECD 국가들 가운데 노동 시간이 가장 길어 일중독에 빠져 있는 나라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씨가 지적했듯이 우리 사회는 놀 거리가 많아지고, 여가 시간도 늘어나도 제대로 놀 줄을 모르거나 이른바 ‘휴테크’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여가시간의 증가가 오히려 사회적인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 준비 없이 갑자기 찾아온 여가시간의 증가 때문에 평소 대화가 없던 중년 부부들에게는 이혼에 이르는 갈등이 생긴다. 휴일에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늘 학교와 학원으로 내몰던 그들과의 소통도 쉽지 않다. 젊은 세대들은 늘어난 여가 시간 덕분에 가족에 구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마음껏 즐기는 싱글라이프가 보편화되면서 결혼도 늦어지고, 동거가 관대하게 받아들여지며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어지는 실정이다. 출산율의 저하는 곧바로 고령화 현상을 가속시키고, 여가시간을 더 풍요롭게 보내기 위해 쉬는 날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나서는 부모들 때문에 청소년들은 갈 길을 잃고 방황하며 탈선의 길로 내몰린다. 결국 이러한 사회 현상의 악순환은 결국 여가문화가 삶의 질적인 상승보다는 오히려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는 ‘여가소외’ 현상을 일으켜 놀이문화를 단순히 상업주의적 쾌락에로 사람들을 몰아간다고 한다. 한 마디로 노는 것이 행복하지 않은 세상이 된 셈이다.
즐겁지 않은 신앙생활
요즘 본당에서 청소년 미사를 해보면 흔히 ‘중2병’으로 불리는 중학생들과 심지어는 ‘호모 중딩쿠스’란 별칭까지 얻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의 질풍노도의 삶이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느낌이다. 미사 시간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입도 열지 않고 무표정한 그들은 미사 시간에 무엇인가 하는 것이 귀찮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귀찮다는 말은 재미없다는 말과 같다. 요즘 최신 문화트렌드를 생각하면 음악과 춤, 재미있는 콘텐츠에 익숙한 그들에게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적 행위들은 그야말로 재미없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본당에서는 청소년들의 눈높이를 맞춘다고 드럼도 치고, 신나는 창미사도 부르지만 여전히 그들에게는 재미없는 일이다. 아이돌 그룹의 신나는 음악과 춤, 연신 쏟아지는 자극적인 영상에 길들여진 청소년들에게 미사는 재미없는 시간이고, 주일학교는 의미 없는 놀이터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성인들에게도 이런 흐름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문화적 코드가 다양해진 사회에서 성인들도 종교적 거룩함과 성스러움의 의미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못하다. 삶의 무게에 지친 중년 교우들에게 신앙은 때로 인생의 힘이 되기도 하지만, 틀에 박힌 미사와 강론, 교우들 간에 자주 발생하는 갈등과 분열 때문에 그나마 생겼던 신앙도 사라지기 쉽다. 남성 교우들에게는 직장과 사회에서 양산되는 성의 상품화와 윤리적 계명과는 상반된 세속적 문화의 유혹들 때문에 신앙생활에 대한 강조가 자유로운 삶에 불편함을 준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재미있는 신앙생활은 없을까?
신앙은 과연 재미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부가되는 의무적인 것일까? 세속화된 현대인에게 종교생활이란 인생을 자유롭게 즐기는데 방해가 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때로는 종교적 의무가 세속의 즐거움을 방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종교가 인간에게 필연적이라는 당위성의 논리로 현대인들에게 믿음을 강조하기에는 역부족이란 생각이 들곤 한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여가문화에 대한 욕구가 커질수록 참된 쉼과 놀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듯이, 우리 신앙생활에도 종교생활의 당위성을 일깨워줄 신앙의 즐거움을 찾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성당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자신의 일상을 성당생활에 중심을 두는 경우가 많다.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안다고 교회 안에서 봉사도 자주 해야 즐겁고, 평일 미사도 자주 참석해야 그 맛을 안다. 성체조배나 성경 읽기, 묵주기도도 자주 해봐야 즐거움을 안다. 중요한 점은 신자들이 그런 즐거움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교회가 가능한 한 자주 기회를 제공해줘야 한다. 요즘은 본당에서 신자들이 즐겁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신앙콘텐츠를 개발하고, 성당에서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들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목에서 냉담 신자들을 모셔오는 것과 주일미사에만 참석하는 신자들을 구분해서 배려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양한 이유에서 냉담 신자들을 이끄는 노력은 레지오와 같은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겠지만, 주일미사에만 참석하고 가는 신자들을 교회 생활의 다양한 매력으로 끌어들이려면 본당 신부와 사목회의 노력이 절실하다. 그들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동기를 자주 제공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즐겁고 재미있는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사제들이 신자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이고, 온화하게 대화하며, 강론을 열심히 하고, 본당에서 교우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본당의 사정에 맞도록 다양한 형태의 문화적 코드를 신앙 코드로 전환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참된 쉼과 놀이를 위한 사회적 ‘휴테크’가 필요하듯이 우리 신앙생활에도 신앙의 재테크를 위한 기술이 필요한 시대가 된 듯하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신자들이 여가문화를 일상의 일탈이나 육신의 나태함에 빠지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건강한 영혼과 정신을 돌보는 일에 시간과 관심을 갖도록 의식을 전환시키는 교회의 지속적이고도 조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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