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오늘의 강론

단식

ohjulia 2009. 2. 27. 09:12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2009. 2. 27. 금) <단식> 음식을 먹는 것은 가장 중요한 생명유지 활동입니다. 우리는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즉 단식이라는 것은 생명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단식한다는 것은 살기를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단식기도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었습니다. 인도의 간디가 그랬었고, 우리나라의 순국 선열들이 그랬었습니다. 5.18 때 전남대 학생회장 박관현... 단식투쟁하다가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어떤 단체가, 단식기도에 들어간다, 단식투쟁을 시작한다고 하면 누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비장한 분위기, 뭔가 처절한 분위기... 눈물이 날 것 같은 거룩하고 엄숙한 느낌... 그랬었는데... 이제는 그저 그러려니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단식기도와 단식투쟁을 너무 남발했기 때문이고, 진짜로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하는 척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말겠지... 라는 생각을 누구나 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비장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냥 며칠 하다 말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에 아무도 긴장하지 않습니다. 단식의 상징은 남아 있지만, 실제 효과는 사라져버렸습니다. 말하자면 단식기도와 단식투쟁의 성격이 변질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활동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간의 단식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냥 상징이 아닙니다. 하느님 뜻을 따르기 위해 당신의 목숨을 걸었던 것입니다. '목숨을 건다.'는 것은, 죽을 수도 있음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활동 중에는 단식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차피 십자가를 향해서 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목숨을 건 단식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단식하지 않으시니, 제자들도 단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에 대해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의문을 품고 질문하는 것이 2월 27일의 복음말씀 내용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일 년에 두 번 단식합니다. 이틀도 아니고, 단 두 끼입니다. 그걸 굶는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 뜻은 목숨을 거는 일, 죽음을 각오하는 일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한다는 정신으로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한 절제나 극기 훈련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숨을 건 행동입니다. 그런데... 상징은 남아 있는데, 그 정신은 어디로 갔습니까? 평소에 다이어트 한다고 한 끼씩 굶는 사람이 재의 수요일날 평소처럼 한 끼 안 먹는 것을 단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침은 굶고, 점심과 저녁은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면 그것이 단식입니까? 걸핏하면 국회의원들이 단식투쟁, 농성한다고 설치는데, 국민들은 그런 모습에 이미 식상해 있습니다. 그러다가 말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이 재의 수요일날, 성금요일날 단식하는 모습을 하느님께서 보시면서 식상해 하실 것입니다. 그냥 형식으로만 흐르는 단식, 실제 정신은 없고, 상징만 남아 있는 단식... 그건 단식이 아닙니다.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극기 훈련, 절제 훈련으로 그치는 단식... 그건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하는 단식이 아닙니다. 옛날, 박해시대 때의 신자들은 믿고 죽을 것인가, 살기 위해 믿음을 버릴 것인가... 라는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의 극한 상황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극한 상황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냥 믿거나 말거나, 성당에 다니거나 말거나... 남들도 신경 쓰지 않지만, 자기 자신도 심각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 자체의 모습이 그렇게 변질되었으니 금육, 단식의 모습도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을 각오로 신앙생활을 했던 순교자들의 믿음 자세를 본받아야 합니다. 목숨을 걸었던 단식의 뜻을 되찾아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모습이 자꾸 형식만 강조하고 정신은 잊어버리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형식만 남고 정신이 실종되면... 그것은 그냥 '생쑈'일 뿐입니다. 어디 단식 뿐이겠습니까? 칠성사, 전례, 기도... 성지순례, 성가, 연도.... 다 그렇게 흘러갑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또 다른 박해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 박해는... 외부에서 오는 박해가 아니라 내부에서 스스로 붕괴되는 박해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정말 진지하고 투철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