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오늘의 강론

복, 자유, 평화

ohjulia 2011. 1. 1. 03:24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2011. 1. 1. 토)(루카 2,16-21)

     

     

    <복, 자유, 평화>

     

     

    제1독서는 민수기 6,22-27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하느님의 이 말씀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하시는 약속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사제들입니다.

     

    그래서 이 약속은 사제들이 백성들을 위해 축복을 비는 기도를 하면

    하느님께서 복을 내려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제들이 강복을 하면 하느님의 복이 내린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복을 비는 기도는 사제들만의 임무가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신앙인의 임무이기도 하고 권한이기도 합니다.

    교리서에서 말하는 일반 사제직이 그것입니다.

    (성직자들은 특수 사제직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복을 빌어주는 일은 새해 첫날뿐만 아니라

    1년 365일 날마다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내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복'은 대체 무엇일까?

    돈 잘 벌고,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만을

    하느님이 주시는 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백 퍼센트 착각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복되신(하느님께서 가장 많은 복을 내려 주신) 여인이라고

    찬양을 받은 성모 마리아를 생각하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복'은 '함께 계셔 주시는 것'입니다.

     

    미사 때 여러 번 반복되는 인사말,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라는 말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기를 빕니다.' 라는 말의 줄임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도 복을 비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2독서 말씀, 갈라 4,4-7은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갈라 4,5)."

    "그러므로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갈라 4,7)."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사람들은 하느님께 노예적인 복종을 하고 있었고,

    죄와 죽음과 율법의 억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사람들은 모든 억압에서 해방되었고,

    노예적인 복종이 아니라

    자녀로서 사랑의 순종을 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꿔서 표현하면,

    그냥 현세에서 잘 먹고 잘 살기만을 바라는 초보적인 신앙생활도 아니고,

    천벌 받고 지옥 가는 것이 무서워서 하는 노예적인 신앙생활도 아니고,

    아버지와 자녀 사이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포심이 아닌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천벌 받을 짓을 한 자들은 여전히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희망은 언제나 남아 있습니다.)

     

     

    복음 말씀의 핵심은 구원과 평화입니다.

    미사 중에 읽는 복음 말씀에서는 빠져 있지만,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라고 대영광송을 불렀습니다.

     

     

    '평화'는 우리가 하느님에게 바라는 모든 것,

    하느님 나라에서 얻기를 바라는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는 복'도 그 평화 속에 포함되고,

    모든 죄와 악에서 벗어나는 해방과

    모든 억압에서 풀려나서 누리는 자유도,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도 그 평화 속에 포함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참 평화'가 바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입니다.

     

     

    그 평화는 돈이나 권력이나 군대의 힘으로 유지되는 껍데기만의 평화도 아니고,

    이 세상에서 잠깐 맛보는 시한부 평화도 아니고,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영원하고 참된 평화입니다.

     

     

    습관적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인사를 많이 하고 있는데,

    도대체 우리가 바라는 ‘복’이 무엇인지,

    정말로 바라야 할 ‘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진지한 반성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정말 좋은 것을 주시는데,

    덜 좋은 것, 아니, 나쁜 것,

    일시적인 것, 허망한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것만 바라고 그런 것만 빌고 있다면,

    연말에 다시 후회만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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