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오늘의 강론

무관심-송영진 모세 신부님

ohjulia 2012. 12. 14. 09:10





     

     

     

     

     

     

     

     

     

    <대림 제2주간 금요일>(2012. 12. 14. 금)(마태 11,16-19)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무관심>

     

    12월 14일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시 사람들을 비판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 11,17)."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이 회개를 선포해도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기쁜 소식을 선포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를 비판하는 말씀입니다.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마태 11,18)."

     

    당시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의 엄격한 극기 고행을 싫어했는데,

    그것은 사실 회개하라는 말이 듣기 싫었기 때문에

    요한의 모든 것을 싫어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헤로데와 헤로디아였습니다.

    그들은 회개하라는 말을 듣기 싫어한 정도에서 멈추지 않고

    요한의 입을 막아버리려고 요한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마태 11,19)."

     

    예수님은 광야가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활동하셨고,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과 잘 어울리셨고,

    요한처럼 엄격한 극기 고행은 안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언자답지 않다고 싫어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요한의 회개 선포와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첫 선포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였는데(마태 3,2),

    예수님의 첫 선포도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였습니다(마태 4,17).

    활동 방식이나 생활 모습이 조금 다르게 보이긴 했지만

    사실은 같은 복음을 선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든 당시 사람들은 회개도 싫고 복음도 싫다고 하면서 거부했습니다.

     

    그래도 수가 적기는 했지만 요한의 말을 받아들여서 회개한 사람들도 있었고,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마태 11,19)."

     

    이 구절의 '지혜' 라는 말은,

    '하느님의 지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뜻하고,

    '지혜가 이룬 일'이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세례자 요한의 회개 선포와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통해서

    사람들을 구원하신 일'을 뜻합니다.

     

    바로 그렇게 사람들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은

    요한의 활동과 예수님의 활동이 모두 옳은 일(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지금 여기서 요한의 활동과 예수님의 활동을 나란히 놓고 언급한다고 해서

    두 분의 활동 방식이 구원을 받기 위한 두 가지 방식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요한의 활동은 예수님의 활동을 준비하기 위한 활동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요한의 회개 선포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활동,

    즉 예수님 활동의 전 단계 활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말은 그리스도교 입장에서 성경을 해석한 것이고,

    그 당시에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의 실제 모습과 생각은 어땠을까?

     

    "그래서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사도 5,38-39)."

     

    이 말은 그 당시에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사도 5,34)

    율법학자 가말리엘이 한 말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자.' 라는 말은 '그냥 관심을 끊자.'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실 당시 사람들은 가말리엘이 언급한 '테우다스'나

    '갈릴래아 사람 유다'의 활동(사도 5,36-37)은 주목했지만

    예수님과 사도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도성이 술렁거리며,

    '저분이 누구냐?' 하고 물었다(마태 21,10)."

     

    예루살렘 시민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과 부활 같은 여러 사건들은

    온 세상을 뒤흔드는 큰 사건이었지만

    당시의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관심했습니다.

    그 일들은 이스라엘 역사서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피리를 불어 주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았다.'

    라는 표현은 사람들의 '거부'와 '무관심'을 함께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다른 일에 더 관심을 쏟는 것이 무관심의 원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하느님의 일과 영혼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일상적인 일과 세속적인 일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마태 24,37-38).

     

    신앙인들이라고 해도 자만하거나 방심할 수 없습니다.

    덜 중요한 일을 더 신경 쓰다가 가장 중요한 일에 무관심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주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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