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 1, 12-2, 4.
마태 17, 14-20.
영광스러운 변모의 사건이 있던 때에 세 제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제자들은 산 아래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에 어떤 사람이 자신의 아이를 고쳐주십사하는 부탁을 제자들에게
했는데, 제자들은 그러한 능력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일행이 산에서 내려옵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마태 17, 17)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마태 17, 20)
10장에서 보았듯이 제자들은 분명 예수께 파견되면서 많은 능력을
보였습니다. (마르코와 루가 복음 병행)
그런데 왜 제자들은 지금 그 능력을 보일 수가 없었던 것일까요?
저는 복음을 보면서 예수로부터 파견되었을 때와 예수께서 계시지 않은
상태는 다르다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예수께 파견되는 이는 그분의 능력을 받아서 자신 있게 삶을 살아가고
능력을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계시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 능력에 믿음을
두지 못한다는 것이죠.
산 아래에 남겨진 제자들은 이미 행했던 일들도 있고 하니 나름대로 능력을
보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둘러싸인 것은 불신하는 이들이고, 그들은 그들 틈에서 자신감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마태 17, 17)
이 말은 믿음을 갖지 못한 불신앙의 이스라엘에 대한 한탄이면서 동시에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마태 17, 20)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이라도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불신앙을
이길 수 있었을텐데, 불신앙에 믿음이 진 것이죠.
“믿음이 약하다”라고 한 것은 여기에서만 쓰이고 있는 단어인데, 믿음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이 없는 것과 같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입니다.
내 믿음이 큰 것은 아니라도 하느님의 능력을 담는다면 안 되는 일이 없는 것을,
제자들의 믿음은 아직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당황하고, 예수께서는 심한 낭패감을 맛보셨지만(언제까지 참아 주어야
하는가?), 그래도 예수께서는 다시 제자들에게 힘을 주십니다.
‘나를 믿어라.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키워라. 그러면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 20)’
그렇습니다. 우리는 겨자씨의 기적을 믿어야 합니다.
이걸로 될까? 라든지, 불신자들이 나를 둘러싸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하더라도, 그 안에 담겨진 무한한 생명력과 가능성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많은 열매를 맺고 산도 옮길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멘.
**신부님 강론 말씀의 제목은 제 임의로 한 것입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 그 진실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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